복(福)을 스토리텔링하는 부안, 흥(興)으로 일어서다
복(福)을 스토리텔링하는 부안, 흥(興)으로 일어서다
  • 김형미
  • 승인 2018.04.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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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깊이가 느껴지는 곳이 있다. 서해 변산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격포 죽막동 끝에서 만나지는 수성당. 창세신화의 주인공인 개양할미라는 대모신(大母神)이 정좌해 있는 곳. 그곳에 가면 여울골 골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바다의 말이 들린다. 숱하게 많은 땅이 있지만, 유독 ‘복(福)’을 부르는 땅이 있다고. 

  예로부터 부안은, 자연과 물자가 풍부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큰 고민이 없는 ‘축복의 땅’이라 일컬어져 왔다. 조선시대 박문수에 의해 ‘생거부안’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일찍이 문화?예술 분야에 남다른 발전을 이룩해온 곳이기도 하다.  

  ‘정감록’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도 화를 면할 십승지의 하나’로 부안을 꼽았고, ?택리지?에서는 ‘소금과 고기가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서 농사짓기 좋으며,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넉넉한 변산’이라 하였다. 더불어‘학문을 숭상하고 인심이 순후한 군자가 사는 고을’이라는 기록도 부안의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부안에서 ‘복(福)을 스토리텔링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고난의 역사를 살아와서일까. 4차 문화혁명을 꿈꾸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우리 한국인들은 복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장판, 가구, 이불보, 아이들의 노리개, 심지어 밥그릇과 숟가락에도 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히 복을 바라는 것은, 세계에서 어쩌면 우리 민족이 독보적일 것이다.  

  ‘福(복)’자를 파자해보면, ‘示 + 一 + 口 + 田’이 된다. 부수자인 ‘示(시)’는 ‘神(신)’으로도 보며, ‘제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一口田을 합하면 ‘가득 찰 복(畐)’이 된다. 샘구멍 한가운데 물이 가득 참을 보는 것이 곧 福(복)인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물이 아니면 나올 수도 없고, 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田(전)은 사방으로 보아 균등하기 때문에 왕의 덕이 밝아 백성들이 고루 태평해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밭을 정직하게 가꾸어 음식과 술을 잘 차려 제사를 지내면, 하늘(示)에서 복을 준다는 말이다. 바로 이 福(복) 자에서 그 옛날 우임금의 정전(井田)제도가 나왔고, 조선 실학자 반계 유형원의 정전제의 정신에 입각한 토지 개혁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 많은 지역들 중 복을 말하는 곳이 왜 부안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여성정(女星精)을 잔뜩 품고 있는 부안 지역 특유의 자연지형 때문이라고 본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부안읍 중심부에는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명당이 자리하고 있다. 봄에 만개한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려서 땅에 떨어진 형국의 터. 얼핏 여성의 자궁 모양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혈터는, 강한 음기가 휘돌아 지금도 사람이 들어가 묻힐 산, 매산리 즉 매산메(山)라 부르기도 한다.  

  이름 그대로 묘를 쓰면 자손이 발복한다는 명당터라 하여 형성된 곳이다. 한겨울 한파 속에서 잔뜩 양기를 응축시키고 있다가 피어난 매화꽃이 만발해 땅에 떨어져 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생기(生氣)가 모이고, 혈(穴)이 흐르는 이러한 매화낙지형 명당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군데밖에 없다. 경북 경산시 평산동 일대를 비롯하여 거제시 서상마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충남 부여군 곡부마을, 광주 매산리 정도이다.  

 “山來水回(산래수회)면 逼貴豊財(핍귀풍재)요, 山頓水曲(산돈수곡)이면 子孫千億(자손천억)이라.”
 

  풍수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청오경(靑烏經)’에 있는 말이다. 산이 다가들고 물이 돌아들면 곧 귀하게 되고 재물도 풍족하게 되며, 산이 모여 있고 물이 감아 돌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성황산을 주산으로 하는 부안은, 바깥쪽으로는 넘실거리는 서해바다를 따라 외변산이 둘러 있고, 풍광 수려한 내변산 안쪽으로는 청호저수지와 고마저수지를 위시하고 있으니, 부안 땅 전체의 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금산(金山)인 성황산의 맥을 타고 내리는 매산리와 더불어, 지형을 형성시키는 창조신적 면모를 보이는 서해바다를 연 모신(母神) 개양할미라는 여성거인 설화. 여성, 즉 생명수(井)인‘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는 땅이니 어찌 복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정수기(水精水氣)라 각종 독의 해독에도 신약이라 할 수 있는 여성정이 있어, 부안에서 나는 것들 또한 가히 ‘서방(西方)의 영약’이라 할 만한 것이다. 다복스런 어머니의 손이 안 가는 곳 없는, 진짜 축복받은 땅이라 해야 할까. 

  그러기에 최근 부안에서 불리어지는 ‘복 노래’가 흥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변산이라 알려져 있는 봉래산(蓬萊山)은 고창의 방장산, 정읍의 영주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 중 하나이다. 방장산에는 소도(蘇塗)가 있고, 영주산에는 천지(天池)가 나오며, 봉래산은 천황이 내려오신 장소라고도 한다.  

  하여 이 봉래산에는 흥을 돋우는 지명이 많다. 봉래구곡의 1곡을 주변으로 ‘퉁소 소(韶)’ 자를 붙인 대소(大韶), 북재, 장구재, 징바위, 신선봉, 병풍바위 등 신들이 내려와 신명나게 노니는 곳. 꽤 오래 잊고 있었던 신명들의 한 판 흥을 이제 다시 사람들이 너나없이 부르는 복 노래가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복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굴러오는 복은 환영하고, 굴러나가는 복은 아쉬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 복을 받는 데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하늘이 주려고 하는 복과 우리가 받고 싶어 하는 복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심이지 진짜 필요는 아닌 것이 복이다. 그래서 복을 바랄 때는 앞서 말한 福(복)자처럼 마음 한가운데의 샘을 깨끗이 치워야 허물이 없다. 그래야 매화나무가 없어도 매화향이 진동하는 매산리 매화낙지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반쯤 벌어진 청매화마냥 싯푸른 달이 휘영청 밝아서는 매산리에 비쳐드는 모양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 동물을 제압하여 산과 평야를 함께 다스리고, 전국 8도를 두루 살피며 지켜온, 우리나라 신화 역사상 그 크기와 광범위함을 따를 수 없는 개양할미가 내밀어주는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명수(井)인 어머니의 마음은 통하는 것이다. 복을 스토리텔링하여 흥으로 일어서는 땅 부안, 바람의 깊이가 느껴지는 그곳에서 말이다.

 

김형미(시인, 전북작가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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