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거름주기
사랑의 거름주기
  • 김동근
  • 승인 2018.04.0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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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다.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매화가 봄 소식을 전하고, 뒤이어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다투어 꽃을 피우다가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꽃은 떨어졌지만 떨어진 꽃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봄이 오면 농촌은 매우 바쁘다. 가을에 알찬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봄에 거름을 듬뿍 주어야 한다. 농부들은 들판의 곡식들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들판에 거름을 퍼 나른다. 그래서 요즘 농촌에 가면 시골의 향기인 거름냄새가 진동한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농촌을 방문했다가 거름냄새에 살짝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거름냄새가 많은 나는 동네일수록 부지런한 농부들이 많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진 지 벌써 70년이 넘었다. 몇 일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평양에 가서 2차례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공연 주제는 “봄이 온다.”였다. 올해 초만 해도 남북한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1950년 이후 전쟁 가능성이 가장 컸던 터라 국민들 모두가 평양공연을 반가워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야만 봄이 오듯이 추운 겨울처럼 엄중했던 남북한 상황에도 봄이 오는 신호인 것 같다. 봄이 오면 농부들이 하는 것처럼 남북 간에도 할 일이 참으로 많다. 4월 27일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뒤이어 5월에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각국 정상회담이 좋은 결실을 본다면, 남북한 관계와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원만해 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 간의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국가 간의 관계 못지않게 사람 간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행복은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교수는 72년에 걸쳐 추적한 연구결과를 펴낸 삶의 지혜 책 <행복의 조건>에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밝혔다. 또한 행복학의 대가인 미국 일리노이대 어배나 섐페인 캠퍼스 심리학과 에드 디너(Ed Diener) 석좌교수도 ‘매우 행복한 사람(Very Happy People)’이라는 논문에서 상위 10%의 행복한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과 보인 가장 큰 차이는 돈이나, 건강, 재산이 아니라 ‘관계’임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확산과 더불어 1990년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관계와 공동체’가 파탄 났다.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의 불행도와 자살률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국민들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 관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아졌다. 물질 중심적 가치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관계나 개인의 심리적 안정 등 다른 가치를 희생하고 있어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돈 버는데 신경 쓰느라 가족관계나 개인의 취미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행복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낮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물질적인 조건의 영향력은 미미해진다. 그때부터 나를 중심으로 한 부모 형제들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회사 동료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해진다. 이들과의 관계가 원만할수록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결국 ‘관계와 공동체’가 파탄 나면서 삶이 불행해진 것이지 돈이 없어서 불행해진 것은 아니다.

 에드 디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이 건강이나 성공, 인간적 성숙성 등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를 보인다. 17세에 행복도가 높은 청소년이 40세가 되었을 때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는 행복감이 성취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설명한다. 행복의 결정적 요인은 사회적 관계, 배움의 즐거움, 삶의 의미와 목적, 작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것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작은 것이라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원만함은 10세까지의 인격형성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가정에서 어린아이를 사랑으로 길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어린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사랑의 거름을 매일 먹고 자란다. 작은 꽃밭 하나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잡초를 뽑아 주고 물을 주면서 정성을 다해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꽃밭을 가꾸듯 유년기에 정성을 다하여 관심과 사랑의 거름을 아낌없이 쏟아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린아이들이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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