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풍류의 고장 전북은 사랑이다
4월, 풍류의 고장 전북은 사랑이다
  • 정영신
  • 승인 2018.04.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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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중춘(仲春) 계춘(季春)의 어우러짐 속에 한바탕 꽃들의 향연이 까르륵 까르륵 하늘 끝에 닿는 꽃봄 4월은 그대로 풍류의 계절이요, 풍류의 고장 전북의 계절이다.

 사실 이 4월의 숫자 ‘4(四)’는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가장 꺼리던 숫자이다. 시인들의 시 속에서조차도 김선굉의 <4월>이나, 박팔양의 <4월> 등 몇 작품에서만 ‘노란 개나리 선홍빛 진달래/만발한 벚꽃처럼 아름다운 벚꽃이 아름답고 청명한 휴일 오후……’, ‘……청춘과 희망의 4월은 왔다./근심을 그대여 물 위에 떠 보내자!//누른빛 개나리꽃 봄소식 전한 후/울 뒤엔 살구꽃이 지금이 한창……’처럼 봄꽃을 노래하고 4월을 반길 뿐, 대부분 4·19 혁명을 반추하는 암울한 ‘핏빛 4월’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 ‘4’는 무속신화 창세가(創世歌)를 보면 하늘과 땅 즉 온 세상을 고정하는 네 개의 구리기둥으로서 동서남북 우주 만물을 뜻하며, 제주도 영등굿의 신달램 놀이에 등장하는 영감 네 명과 봉산탈춤의 잡귀와 잡신을 쫓는 네 산신이 의미하듯이 벽사(?邪)의 수이며,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우리 인간 삶의 네 단계를 표상할 때는 이 ‘4’가 곧 우리 인생 전체이며, 정지용의 <향수> 중 ‘사철 발 벗은 아내가……’와 김찬식의 <사계> 중 ‘ 밤 가고 새벽 돋듯,/ 조용조용 접하는 사계(四季)……’에서처럼 ‘늘, 항상, 영원히’ 등 시간의 영속성을 뜻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간과 태양의 운행을 이끄는 신성한 수로서 10과 함께 신을 뜻하며, 또한 ‘4’는 중국 발음으로 ‘사(四)’와 ‘희(喜:기쁠 희)’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즐거움을 뜻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유숙의 <화조도>나 조속의 <조작도>에는 기쁨을 상징하는 까치 네 마리를 그려 사희(四喜)를 표현했다.

 이처럼 우주만물과 늘, 항상, 기쁨, 그리고 완전하고 온전하고 무한한 신의 힘, 온갖 잡스러운 것을 몰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 ‘4’의 4월은 들과 산으로 꽃구경을 나가 마음껏 자연과 인간이 혼연일체가 되어 온전한 교감을 나누는 ‘상춘(賞春)’과 ‘답청(踏靑)’의 계절, 풍류의 계절이다.

 풍류란 ‘바람 풍(風), 물 흐를 유(流)’의 한자 조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바람의 흐름처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 자연과 가까이하고, 멋을 알고, 음악을 알고, 사랑을 알고 진정으로 그 예술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또한 세상만물의 영혼과 그들 마음의 소리들과 교감하고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정의했듯이 ‘현묘한 도로써 살아 있는 생명체인 군생들을 감화시키는 것이 곧 풍류다. 그러니까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그 관계 속에 현묘한 도를 품고 진달래빛 개나리빛 복숭아와 행화빛 봄빛 사랑으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그 멋짐이 소통될 때 그것이 진정한 풍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풍류의 조건을 온전하게 갖추는 우리 전북은 망설일 것도 없이 한국을 대표하는 풍류의 고장이다.

 봄을 찬양하는 ‘상춘곡’의 산실인 정읍 태인, 그곳은 처가가 있던 정극인이 후학양성과 함께 풍류를 즐기던 곳이며, 풍류를 정의한 고운 최치원이 886년에 1년여 간 태수를 지낸 곳이다. 또한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어화 둥둥 내 사랑이야……업고 놀고 안고 놀고……’라며 전 세계 문학과 예술작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남녀의 ‘사랑놀음’을 가장 풍류적으로 표출한 <춘향가>의 고장 남원은 우리의 정서와 멋과 풍류가 어우러진 판소리 동편제의 태자리이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장 늦은 벚꽃의 기다림을 품고서 금방이라도 신의 음성이 들릴 듯한 자연의 신령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지닌 조선 태종이 명명한 진안 마이산, 섬진강가 달빛 휘감은 배꽃의 노래, 그리고 좁은목을 휘돌아 한벽당가 저만치 서 있는 진달래와 개나리, 천변의 벚꽃, 옥정호를 향한 연서 같은 선분홍 연분홍 복숭아꽃이 가슴 설레게 봄강물에 날리는 그곳, 대둔산 치맛자락 산마을 곳곳에 점점이 자리한 살구꽃의 향연, 그리고 신윤복의 <상춘야흥> 속 여인이 고이 받쳐 든 그 술, 화사하고 농염한 봄꽃들이 유유히 풍류가락에 맞춰 꽃잎배를 띄운 채 흠씬 춘흥에 젖은 전주 막걸리촌, 또 전주 한옥마을의 사철 바쁠 것도 없는 인꽃 내음,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상춘(賞春)의 노래들인가.

 그리하여 4월, 풍류 따라 풀풀 온갖 꽃잎 날리는 풍류의 고장 전북은 진정 사랑이다.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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