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는 미래로 가는 교차로다
공정경제는 미래로 가는 교차로다
  • 이상직
  • 승인 2018.03.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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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갑과 을이 있다. 갑에게는 10의 돈이 주어져 있으며, 자신의 마음대로 그 돈 중 일부를 을과 배분할 독점적인 권리가 있다. 다만, 을이 그 제안을 거절하면, 갑 역시 돈을 나눠 가질 수가 없다.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갑은 5:5나 7:3 사이를 제안하면서 행복하게 을과 돈을 나눠 갖는다. 하지만 8:2가 되었을 때에는 대부분 을이 그 제안을 거절한다. 경제적 논리만 따지면 을의 이러한 선택은 현명하지가 못해 보인다. 2든 1이든 일단 받아 두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을은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공정한 갑에 대한 을의 징벌이다. ‘아무리 그래도 8:2는 너무하지 않은가?’ 라는 공정성에 대한 잣대를 통해, 을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2를 포기함으로써 갑에게 돌아갈 8도 무산시켜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분명히 경제적인 동물이지만, 그 이전에 ‘공정을 추구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누군가는 매우 편하게 걸어도 빨리 앞서 나갈 수 있었고, 누군가는 아주 열심히 뛰어도 늘 제자리였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던 셈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과거에 유지해왔던 많은 경제 정책 기조들이 뒤바뀌고 있다. ‘사람중심 일자리경제,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바로 그것이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먼저 새로운 변화를 시작해야만 전체 기업들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이에 중소기업진흥공단은 공정 경제 생태계 유지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저 임금을 실천하며,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혁신기업들에 우선적으로 지원을 할 예정이다. 이러한 혁신기업들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뛰어나고 성장 및 데스밸리에서 빠져나오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지원에 따른 효과가 클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썬키스트는 유통업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농부들이 모여 만든 ‘농민협동조합’으로 생산부터 판매까지 직접 함으로써 공급자, 소비자 모두 공정한 가격에 판매하고 구입한다. 이렇듯 협동조합들은 공정 경제의 실천자들이다. 민주주의와 평등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조합이라는 특성상 고용안정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혁신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우선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 집행이 더디다는 이유도 있다. 새로운 정책들이 확산하고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선봉장이 되어 이들을 현장에서 지원하게 되면 토대에서부터 우리 경제는 더욱 튼튼하고 공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미래로 가는 길의 모든 교차로에서, 앞서가는 정신은 과거를 수호할 임무를 띤 수천 명의 반대에 부딪친다.”고 말했다. 공정경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반대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경제 성장을 방해할 것이며, 산업 경쟁력을 낮춰 국가 경제의 활력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산업화를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평평한 운동장이었던 적이 없었다. 공정경제는 미래로 가는 교차로이다. 경제가 공정하지 못하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의욕이 꺾이고, 근로자들의 사기가 저하된다. 비록 ‘과거를 수호하는 자들의 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을 해야 할 때이다.

 이상직<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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