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를 기다리며
전주국제영화제를 기다리며
  • 김차동
  • 승인 2018.03.26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산은 내게 각별한 도시다. 청소년기와 청년기,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당시 군산은 전주와 자웅을 겨루는 전라북도의 중심 도시였다. 은파뽀드장(지금의 은파유원지)에는 수상가옥과 방갈로가 들어섰고 수십 척의 보트며 유람선도 띄우고, 수상스키와 눈썰매장도 갖췄으니 오늘날의 레포츠 문화를 선도한 지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식 극장도 여러 곳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연극이나 음악 공연과 영화 상영이 동시에 이뤄졌다. 오늘날의 멀티플렉스나 다름없었다. 군산극장은 전북 최초의 실내공연장이었다. 이곳에서 가수 이은하씨의 리사이틀이 열린다고 해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레었다. 같은 하숙집에서 기거하던 대학생 형들에게 부탁해 표를 대신 구하고 형들 무리에 끼어 슬쩍 들어갈 수가 있었다. 쇼 타임! 화려한 불빛과 심장을 울리는 사운드, 극장에서 처음 본 가수의 리사이틀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요즘 청소년들이 들으면 ‘설마 그런 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영화관 출입이 금지됐다. 단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사실만으로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 탈선행위를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극장에 갔다.

 기억나는 영화관만 해도 피카디리, 명화극장, 제일극장, 대한극장, 국도극장 등 줄잡아도 대여섯 개나 된다. 지금 전주에 있는 영화관 수와 비교해볼 때 굉장히 많은 숫자다. 군산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융성해있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가운데 내가 즐겨 찾은 곳은 국도극장이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보고 나서 하숙집에서 형들과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던 일, ‘원웨이 티켓’을 본 뒤에 팝송에 빠져 공책 빼곡히 가사를 한글로 적어 외우던 일이 생생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도극장의 전신인 ‘희소관’ 역시 전라북도내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전북 최초의 공연장과 영화관이 모두 군산에 있었으니 나는 알게 모르게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이후 사회인으로 정착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몇 년이 지나고 나는 숙제하듯 영화관을 드나들었다. 영화가 점차 보편적인 대중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산책하고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행위가 되었다. 청취자들의 이야기 속에 영화나 그 영화 속 대사, 주인공, 음악이 수시로 등장하니 그 영화들을 관람하지 않고서는 청취자들의 삶 속에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 직업 훈련(?)의 하나로 숙제하듯 영화관을 찾았다.

 대중과의 공감이 목표기 때문에 이때 보는 영화는 대부분 박스 오피스 순위에 올랐거나 화제의 중심에 있는 영화들이었다. 그러니 청취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제법 나는 아는 체를 할 수 있었고 나름 영화적 지식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여겼다. 대중 영화 속의 세계관, 스토리 방식, 주제 등은 점차 익숙해져 갔고 나는 당연히 그것이 영화 전부인 줄 알았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기 전까지는.

 ‘대안-독립-디지털’ 영화제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등장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시골뜨기인 내게 충격적인 선언과 다름없었다. ‘세상에는 이런 것도 있단다’하고 동화 속 요정이 머리 콩 박아 일침을 날리는 것과도 같았다. 물론 이전에도 작은 영화들은 존재했지만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다니는 열정과 취향은 가지지 못한 소시민이었기에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이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해를 거듭하며 영화가 점차 현실이 되는 걸 느꼈다. 이전까지 내게 영화란 판타지, 있을 법한 이야기, 관람하는 매체였다면 이후에는 현실,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삶 그 자체로 바뀌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 저마다 치열한 삶, 그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 상업 영화는 절대 다루지 않았을 다양한 목소리, 주제.

 세상은 이토록 다양하고 개성 있는 존재들로 이뤄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나와 비슷한 무리, 비슷한 이념에 국한되어 있던 의식의 틀이 깨지고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한 달 후면 또 한 번의 전주국제영화제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 또 어떤 개성 있는 존재가 역사가 생이 나를 흔들어 깨울 것인가. 나는 4월이 떨리도록 기다려진다.

 김차동<전주MBC프로덕션대표>

 약력 ▲경영학박사 ▲전주MBC 모닝 쇼 진행 ▲전북경찰청 홍보대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