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세한도(歲寒圖)
예술가와 세한도(歲寒圖)
  • 이길명
  • 승인 2018.03.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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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추사 김정희(1786~1856) 1844년 作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거나 혹은 이를 재창조하는 사람, 자신의 예술적 창작을 자기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러한 방법으로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 고용되어 있거나 어떤 협회에 관여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거나 인정받기를 요청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1980년, 유네스코 제21차 총회에서 발표한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는 예술가를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또한 모든 시민들이 각자 역할에 따라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예술인도 창조적 표현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예술가의 신분과 예술창작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법적, 사회적, 경제적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에 예술가의 사회적 순기능을 제시하는데 1)창조적 역할 수행을 통한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2)문화적 주체성의 보존과 촉진, 3)평화와 정신적인 풍요가 있는 환경조성, 4)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기여를 꼽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유네스코의 권고가 예술가의 순기능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한다. 예술의 경지를 이루면서 사회의 진보와 존경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세한도>등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추사 김정희의 예술철학과 삶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세한도(歲寒圖)>는 조선 시대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59세에 제주도에서 유배 중에 그린 그림으로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한도>는 모든 것을 잃고 죄인의 처지에 있는 자신에게 사제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귀한 책들을 구해 보내 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에게 답례한 그림이다. 빈약한 초가집을 중심으로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를 갈필로 그렸는데, 휑한 공간감으로 귀양살이와 스산한 겨울 분위기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우리가 그의 화격이나 필체를 논하지 못하더라도 사색에 들거나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김정희의 학문과 인품, 사상이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세한도>에는 청나라 학자16명과 후손의 발문이 함께하고 있어 그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추사는 제자가 3,000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교육활동에 힘썼던 교육자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추사의 제자 민규호의 기록에 따르면 추사가 제주에 온 뒤 글을 배우려고 찾아온 자가 대단히 많았고 두어 달 동안에 인문이 크게 열려서 탐라의 황폐한 문화의 개척은 추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추사는 그의 삶에서 가장 쇠락한 시절이었을 제주도의 유배에서도 예술가로, 학자로, 교육자로서 역할을 다했으며 그 존경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세한도>는 작가의 인격과 품성을 빼놓고 논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학문적 지식과 실천적 행동을 따로 보지 않았던 사상은 작금의 상황(미투운동)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작품을 비평함에 있어 작가의 인품과 성향은 비평의 대상에서 쉽게 배제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시인 고은처럼 예술적 경지와 성과가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윤리적 문제로 인하여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지탄을 받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제 대중은 고은의 예술적 경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사상과 작품이 ‘거짓됨’이라고 믿고 있다. 예술과 인품은 동일시 되어야하는가,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필자는 이 현상에서 보이는 오류나 비평문화의 잘잘못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렵게 쌓은 예술이 무너지지 않기를, 소중한 예술가를 또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예술가가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다지자는 것이다.

 

 글 = 이길명(조각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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