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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복원
이상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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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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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형무소는 우리 주권을 강탈한 을사(乙巳)늑약 후 크게 부족한 감방 해결을 위해 일제의 강요로 지은 것이다.

▼ 당시만 해도 한양에는 우포옥(右捕獄), 좌포옥(左捕獄), 의금부옥(義禁府獄) 등 3개 감옥뿐이었다. 서대문 밖 인왕산(仁旺山) 기슭에 당시로는 대규모로 지은 신식감옥으로 1907년 준공되었다. 건물 앞쪽만 벽돌담으로 했고 나머지는 아연판(亞鉛版)으로 두르고 햇볕을 차단해 음산하다고 한다.

▼ 일제가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킴에 따라 민심이 들끓는 때 조선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지은 형무소라해서 더욱 민심이 흉흉해지자 한동안 개소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 기간을 통해 안창호를 비롯해 손병희, 이승만, 유관순, 김구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모진 옥고를 치른 우리 민족 수난사와 민족 저항의 정신사가 짙게 모아진 역사의 현장이 서대문 형무소다.

▼ 일본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고 사형당한 강우규 열사가 손톱으로 새겨놓은 글씨도 있고 유관순 열사가 고문당하다 숨진 특수감방도 있다. 또 많은 애국 투사들의 옥중 편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 민족사의 원(怨)이 잔뜩 서려 있는 곳이다. 최근 서대문형무소를 일제강점기인 1936년 때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보도다.

▼ 문화재청이 보관하고 있는 당시 건물배치 도면을 중심으로 고문 기구 등 유물 발굴은 물론 독립투사들이 겪은 고통의 흔적들을 찾아 중요한 공간도 복원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서대문형무소 한구석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령(怨靈)을 위로하는 신당(神堂)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왕 함께 복원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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