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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자의 침묵이 성폭력의 창궐을 조장한다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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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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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하면서 허구의 존재로 간주하였다. 소유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사랑이라는 거룩한 가치로 포장하고 상업적으로 소비했다. 가해자는 온갖 언설로 죄상을 호도하며 피해자에게 ‘가만 있어라’ 협박한다. 피해자는 겁에 질려 숨어버린다. 페미니즘이나 성 평등 주장은 반사회적인 일로 낙인찍었다. 최근의 미투 캠페인을 접하고 생각나는 말들이다.

 그간 내면에 숨어 있던 피해 여성들의 상처, 수치와 혐오가 공론의 장에서 파레시아, 즉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권력으로 억누르고 주변의 동반자들이 은폐 방조했던 침묵의 카르텔이 깨진 것이다. 오랫동안 상처를 간직하고 험난한 고통을 견뎌낸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가부장 문화, 남존여비 사고, 성폭력의 본질 등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인식, 태도, 행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담론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은 성 평등 민주주의의 실천을 다짐하고 확인하는 날이다. 지금까지는 단 하루만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들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미투는 그 고통의 외침이자 절규라고 볼 수 있다. 근대 인권의식이 성장하면서 남성과 여성은 더불어 살고 함께 존엄성을 더 높이려고 노력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모든 인간이 자긍심을 갖고 희로애락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동물과 분별되는 이유다. 인간은 소유하고 욕망을 탐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당위성은 현장에서 여지없이 전복되어 온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성폭력은 당하거나 저지를 수 없는 남의 일로 치부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무시했다.

 지금까지 성폭력에 대한 담론은 휘발성이 강했지만, 순식간이 꺼지곤 했다. 성범죄를 척결하거나 예방하는 데 효과가 없었다. 성폭력을 당연시하고 고발의 파장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권력형 조직문화가 교묘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종교·법조·체육 등 분야별 특수한 관행, 남녀관계의 폐쇄적 성격, 사건이 벌어진 시간과 공간의 특성, 가해자의 권력 본능이 괴물들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피해자의 폭로 앞에 가해자들은 사과하는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있으나 속으로는 시간이 어서 가주기만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명예훼손, 존경받는 어르신, 훌륭한 업적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고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덮으려는 시도가 되풀이된다. 정치적 진영논리, 음모론도 꿈틀댄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청과 공감의 말, 진정한 사과의 말,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말은 사라지고 궁색한 말만 넘쳐날 뿐이다. 미투가 사회 변혁의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되는 길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만만치 않음을 목도할 수 있다. 낡아 빠진 시대에는 진리로 통했던 관념이 비리, 범죄행위로 규정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몸부림이다.

 미투는 가부장 문화와 성차별, 젠더 권력의 횡포로부터 발생하는 성폭력이 정치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 중심의 헤게모니를 해체하라는 것이다. 여성이 종속성을 탈피, 중심부에 자리 잡는 실천적 운동으로 패러다임 전환과 맥을 같이한다. 여성의 관점에서 자유, 평등, 인권의 가치를 해석하고 보편성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미투 운동이 우리사회를 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이 우선 개인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페미니즘 문화의 일상화, 권력형 갑질의 근절, 남성우위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힘을 과시하고 폭력을 일삼는 권력형 성폭력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이뤄내라는 시대적 요청이다. 유명인사로부터 촉발된 이 운동이 주목받지 못한 낮은 단계의 일터로까지 확산하고 저변을 넓혀 가는 일 또한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 중심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피해자를 법적·제도적으로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해서 악이 범람하는 시대를 끝내는 일이 급선무다. 가해자들이 만들어 유포하는 가짜뉴스와 선정적 보도 행태, ‘너무 지루하니 그만하자’는 물 타기 행위, 소비문화로 전락시키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성폭력의 창궐을 조장하는 일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겨우 급진적인 변화를 실천하고 지속 가능한 탄탄한 기반을 준비하는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권영후<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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