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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특집 |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초의와 사대부들의 차 품평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24>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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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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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초의에게 _차를 덖을 때 불의 온도에 주의_하라는 조언이 있다.
 초의선사(1786~1866)는 오늘날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선후기 해남 대흥사 12대 종사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시, 선, 차, 불화에도 능했다. 초의의 사상은 전남 강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1762~1836)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다산에게 시학과 유학을 배웠고, 후일 사대부들과 교유를 통해 그의 차에 대한 애호층을 형성하였다. 당시 승려는 신분이 낮은 관계로 많은 제약이 따라 자유롭지 못했다. 사찰의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차도 직접 만들어 마셨다. 초의가 많은 문사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매개물은 차와 시였다. 그는 1815년 처음으로 상경해 문사들과 교분을 맺기 시작한다. 이때 다산의 아들 정학연(1783~1859)이 이들을 소개하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시회(詩會)는 당시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벗으로 맺게 된 것이다. 여기에 초의의 차는 시회를 더욱 빛나게 했으며 시의 주제가 되었다. 처음부터 초의가 만든 차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의차가 주목되어지기 시작한 것은 다산과 추사, 추사의 형제들과 그 주변의 지식인들과 교류가 확대된 1830년 쯤 부터이다. 차를 주고받고 시회가 열리고 왕래가 있으면서 차 애호층이 형성된 것이다. 그들 중에 특히 추사 김정희는 초의가 만든 차를 마시고 결점을 지적하여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당시 사대부들이 중국차를 구입하여 마셨던 상황으로 보아 추사의 차에 대한 안목은 그가 24세 때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북경에 갔을 때부터 식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차를 즐기기도 했지만 초의가 만든 차를 품평하기도 한 것이다. 추사가 초의차를 받고 차 만드는 방법을 지적하는 편지가 있다. 추사가 1838년 4월8일 초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차를 보내주니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낍니다만 매번 차를 덖는 법이 조금 지나쳐 차의 정기가 덜 드러난 듯합니다. 차를 다시 만들 때는 화후를 살피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찻잎을 덖는 과정에서 불 조절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아 추사는 이미 차 맛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것 같다. 추사는 초의가 만든 차만이 아닌 초의 제자 상훈스님이 만든 차를 동파공이 마셨던 추아차 못지않게 향기로운 맛이 있다고 극찬을 한다.

  자하 신위(1769~1845)는 시, 서, 화의 삼절이라 불릴 만큼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그는 정학연과 추사와도 교류가 있었다. 초의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830년경이다. 신위가 외척 세력으로부터 탄핵된 후 자하산방에 머물고 있을 때이다. 초의가 그의 스승 완호의 삼여탑명(三如塔銘)을 받으려 했던 시절, 여러 인연으로 초의는 신위와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비문을 부탁할 때 마다 차와 편지를 보냈다. 신위는 초의차와 관련된 「남다시병서 (南茶詩?序)」를 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다는 호남과 영남에서 나는 차이다. 신라 때 중국에서 차 씨를 가져와 산곡에 파종하여 싹이 돋았다. 후인들이 잡초라 여겨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근래에 차산지 사람들이 찻잎을 따다가 쪄서 마셨으니 이것이 곧 차이다. 초의는 몸소 차를 만들어 당대의 명사에게 차를 보냈는데, 이산중이 초의차를 얻어 금령 박영보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차를 금령이 나를 위해 달여 맛보고 「남다가」를 지어 보이니, 나 또한 그에게 화답한다. 인적 없는 골짜기에 난향처럼 은근한 차 향기, 초의 스님 차 따는 두 손이 분주하다. 승루에는 곡우절 봄비내리고 새로 만든 떡차 붉은 비단에 쌌네. 부처에게 공양하고 남은 차는 시인의 벗이요. 묵객의 품격을 아름답게 높여주네.’ 이글처럼 초의차는 당시 문사들에게 벗이요 아름다운 품격이었다. 차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삼고 때론 초의 차에 대해 품평도 아끼지 않는다. ‘초의차는 맛이 너무 여리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보관했던 학원차(壑源茶)와 섞어 같은 항아리에 보관하였다. 새 차와 어우러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사용하여 마신다.’ 맛이 여리다는 것으로 보아 새 차는 햇 차를 의미한 듯하다. 새 차의 맛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묶은 차와 햇 차를 섞어 마신듯하다. 초의가 현대에 이르러 다성으로 불리는 것은 직접 차를 만들어 명사들과 꾸준히 교유하고 품평을 참고하여 한국 차의 품격을 높인 점일 것이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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