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영웅 ‘전북 의병’ 찾는다
3.1운동의 영웅 ‘전북 의병’ 찾는다
  • 설정욱 기자
  • 승인 2018.02.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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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 전북도민일보 창간 30주년 기획>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전라도는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다.

특히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전북 출신 의병장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북에선 구한말 을사늑약에 분개해 정읍의 무성 서원에서 봉기한 병오창의(1906)를 시작으로 후기 호남의병의 중심이 되어 많은 이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에 항거해 독립투쟁에 신명을 바친 애국지사들에게 의기를 전한 것이 바로 의병운동 참여자들이다.

이에 전북도는 전북광복회,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손잡고 의병 역사 재조명과 의병운동 참가자 신규 발굴을 위한 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대한제국기 일제에 맞서 자주독립에 앞장선 전북 출신 무명의병 800여 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성과를 통해 학계 연구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전북지역 의병운동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전북지역 의병 운동사의 연구 영역확장과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위상 정립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 항일 의병활동의 중심 전북

항일 의병활동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바로 전라도다.

하지만 전북지역은 을미의병(1895~1896) 시기 뚜렷한 활동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동학농민혁명 이후 극단적 대립 관계를 양성했던 유생과 농민의 갈등, 의병활동 주력인 민중의 전투력 쇠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후 1905년 11월 조선의 자주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이후 의병항쟁이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 시기부터 전라도에서 의병활동을 주도했다.

일제 통계를 토대로 한 의병항쟁의 양상을 놓고 봐도 타지역과 비교를 할 바가 아니다.

1908년 일본 군경과 교전 횟수 및 교전 의병 수에서 전라도는 전국 대비 25%와 24.7%를 차지했다.

1909년에는 47.2%와 60%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 역사적 의의

전북의병은 다른 지역에 비해 10년이나 늦게 태동했다.

이 지역이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로서 그 후유증이 심각했음을 반증한다.

의병을 주도한 인물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석용과 같이 전북 출신인 경우와 김동신, 문태서 등 인근 지역 출신이지만 전북에서 활약한 경우, 그리고 전해산, 황준성 등과 같이 지역을 넘나들거나 타지역에서 활동한 경우다.

전북의병 가운데 중기 의병 시기에 활동한 전북출신 의병장들은 중인 신으로 반동학적 성향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들은 정읍, 순창, 남원 등 남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중기 의병으로 활약한 의병장들의 연령은 주로 50대가 넘는다는 점에서 사상과 활동상의 제약을 짐작할 수 있다.

전북의병은 동학농민혁명의 후유증으로 늦게 시작됐지만 후기 의병 시기에는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다.

그후 나라가 망하자 국내 비밀결사운동, 특히 독립의군부와 광복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전북의병은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비밀결사 운동을 주도한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주요 의병들

수많은 의병들은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하거나 살인, 강도, 내란 주동자 등으로 낙인찍혀 모진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김제출신 박영춘 의병과 익산의 여학봉 의병이 대표적이다.

박영춘 의병은 도내 일원에서 의병활동 중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항일투쟁 전 직업은 쇠붙이를 다루던 대장장이로 알려졌다. 

여학봉 의병장은 익산과 군산 일원에서 무장투쟁 중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감방에서 순국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판결문은 “융희 2년(1908) 3월 중 거주지에서 김호남의 권유에 응해 도적의 무리에 들어가 동월 어느날 김호남 외 3명과 함께 각자 총을 가지고 전북 임피군 나포리 이인숙의 집에 돌입해 그의 처에게 위세를 보이며 협박해 엽전 75냥을 강탈한 자다”고 쓰여있다.

재판부가 여학봉 의병을 강도로 낙인, 종신형에 처했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외에도 이밖에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의병도 수 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활약상은 찾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 추후 과제

최근 전북의병사는 한층 심화된 연구로 진전되고 있다.

다만 신진 연구자가 거의 배출되지 않았다는 점은 심히 우려스럽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광복회 전북지부가 편찬한 이번 ‘한말전북의병사’책에선 전북의병 재평가를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따라서 전북의병 연구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연구자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

또한 중·소 규모로 운용된 의진과 그것을 주도한 인물에 대한 연구로 심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연구는 대체로 최익현을 비롯한 유명 의병장이나 대표적 의진에 치중됐다.

하지만 전북의병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례를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아울러 호남의병의 생활사에 대한 연구도 병행돼야 한다.

의병항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의식주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고 의병에 투신한 일반 의병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타지역 의병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각 지역별 의병의 특징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도층의 신분이나 행적, 활동 내용, 구성원의 비교 분석을 통해 각 지역 의병의 특징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민족운동과 비교함으로써 한말 의병의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설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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