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필(握筆)의 서예가 석전 황욱 선생님을 그리며
악필(握筆)의 서예가 석전 황욱 선생님을 그리며
  • 원암 오광석
  • 승인 2018.02.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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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세 우수악필
▲ 93세 좌수악필

근대에 전라북도에는 걸출한 서예가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암 송성용(1913~1999)선생님과 석전 황욱(1898~1993)선생님이 뛰어 났는데 오늘은 악필의 대가 석전 황욱선생님에 대해서 논하여 보고자 한다.

 필자가 석전 황욱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12월 중앙일보사 초대전으로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석전 황욱 망백전’ 전시를 할 때 이다.

 전시장에 있는 석전선생님의 작품을 관람하고 현장에서 좌수 악필로 휘호하는 선생님을 뵙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즉 필(筆)의 골기(骨氣)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강건하고 굳셀 뿐 아니라 기암절벽의 노송 같은 생동감이 90세를 넘긴 망백의 노인이 쓴 글씨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때의 인연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논문주제를 ‘석전 황욱의 서예연구’로 정하였고 2000년도에 ‘석전 황욱의 서예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추사가 절망적인 유배생활에서 추사체를 완성하였듯이 석전선생님 또한 어려운 고난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악필서체를 완성시켜 갔다는 점에서 대단히 존경스럽다.

 석전선생님께서는 고창 성내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초년 에는 한학과 서예에 정진하였고 활쏘기와 가야금 등 육예(禮,樂,射,御,書,數)를 익히며 호강하게 지냈다.

 1910년 한일합병이란 경술국치를 당하자 1920년 금강산 돈도암에 들어가 10여년 동안 지필묵을 벗 삼아 망국의 한을 달랬다. 6.25후 남로당 전주시당 위원장이였던 큰 아들이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자 석전선생님이 간절한 탄원서를 올리자 명필에 감복한 이승만 대통령은 무기로 감형 재 결재를 해 주었다.

 회갑을 지나면서 수전증이 오더니 갈수록 심하여 정상적인 집필법(執筆法)으로는 글씨를 쓸 수가 없자 붓대를 손바닥으로 움켜잡는 악필법(握筆法)을 개발하여 서예에 정진하였다.

 바깥세상과 단절한 체 오직 글씨만 써온 석전선생님은 1973년 4월 나이 76세에 아들 황병근씨의 권유로 전주 아담다방에서 30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까지 서단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석전선생님의 독특한 서풍과 선이 굵고 힘이 넘치는 악필 작품을 보고 전시장을 둘러본 사람들은 물론 이미 서예가로 명성이 높았던 강암 송성용선생님께서도 “요즘 모양만 근사하게 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석전선생의 서예전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그 필력의 경건(勁健)함은 오랜 경험과 예술가적 인격에서 우러나온 응당한 소산이라고 본다” 라고 평을 하였다.

 76세에 첫 전시를 연 후 그 여세를 몰아 다음해에 서울에서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희수전(喜壽展)을 열어 당당히 중앙무대인 서울에 입성을 하였고 그 뒤에도 서울 현대화랑,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석전선생님께서는 나이 86세 때 오른손 수전증이 더욱 심해져 87세 때부터 좌수악필로 일관하였다.

 1988년 중앙일보사 호암아트홀 초대 ‘석전 황욱의 망백전’이 개최되었는데 대작인 소동파의 적벽부18폭 병풍을 비롯하여 70여점이 전시되었고 김영삼, 김대중 같은 유명 정치인들과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관람을 하였다. 그 뒤에도 부산일보 초대전과 동아일보 초대 회고전이 이어졌다.

  석전선생님의 좌수악필 전성기는 90~94라고 볼 수 있다. 이 전까지는 자형(字形)이 좌우 수평이거나 오른쪽이 약간 올라갔으나 이 때부터는 오히려 오른쪽이 내려가는 자형의 작품을 많이 하였다.

  자형의 오른쪽이 내려간 어색함을 상하좌우로 불규칙하게 흔들어서 그 단점을 보완하였다.

 높은 예술적 감각과 불굴의 의지로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90세를 넘기면서 좌수악필을 꽃 피우던 석전선생님은 1992년부터 노환으로 앓다가 1993년 3월22일 우리나이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석전선생님은 표면으로 보여 지는 부분보다는 고난과 역경을 꿋꿋이 이겨내면서 쌓은 깊은 내면의 세계를 토해낸 서예와 그러한 심오한 정신이 어우러져 좌수악필의 서예술을 꽃 피웠다고 본다.

 1999년 5월에 아들 황병근씨가 석전선생님의 유작 418점을 비롯한 문화재급 각종 유산 5,200여점을 전주국립박물관에 기증하여 석전기념실이상설되어 있고 2016년에 석전선생님의 흉상을 건립하였다.

 석전선생님이 떠난 지 어언 25년이 흘렀지만 선생님의 예술 혼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영원할 것이다.

/ 글 = 원암 오광석(전북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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