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망해사에서
김제 망해사에서
  • 임보경
  • 승인 2018.02.2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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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의 선을 따라 어느메가 끝을 알릴까 달려본 길은 서해와 김제의 지평선이 맞닿은 곳(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위치한 망해사였다. 천년고찰답게 나지막한 평야의 끝자락에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모습은 숙연했다. 여기서 잠깐 역신을 배려와 용서로서 감동시켜 무릎꿇게 했다는 처용을 노래한 처용가의 유래가 얽힌 울산의 개운포에 세워진 망해사가 떠올랐다.

 편안하게 자리한 심포리 진봉산 아래의 벼랑 끝에 바다를 정원인양 품는 망해사의 모습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백제 642년 의자왕(2년)에 부설거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짓고 수도를 최초로 하였다 한다. 그 후 여러번의 증축 과정이 시대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589년 조선시대 선조 22년에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웠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남겼다 한다. 진묵대사가 망해사에 머물고 있을 무렵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어 망해사가 바다 한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손만 내밀면 해산물이 손에 잡힐 기회가 많았다 한다. 하루는 진묵대사가 굴을 따서 먹으려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스님이 왜 육식을 하느냐고 묻자 “이것은 굴이 아니라 바위에 핀 꽃 즉 석화라고 한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망해사의 앞바다는 아주 커다란 정원이었던 것이다.

 망해사의 입구에 들어서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니 “아~~예쁘다.”라는 꾸밈없는 감탄사가 나온다. 아마 이곳을 찾는 이유가 이런 감동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바다를 그리며 바라본다.’라는 뜻의 망해사는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오로지 바다만 바라보며 서 있었을까? 현재의 모습은 망부석이 된 형상 같았지만 고즈넉하게 아름다웠다. 또한 한자리를 지금껏 지켜온 망해사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옛 기억 속의 이곳은 뒤에는 끝없는 들판이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 낙조가 떨어지는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를 썼던 풍광의 눈앞에 선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새만금방조제의 영향으로 그 모습 추억의 여운에 아쉬움을 전한다. 그 아쉬움 속에 망해사에서 바라본 낙조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과 함께 놓칠 수 없는 절경으로 뽑힘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낙조가 아름다운 곳! 사진촬영의 일품이리만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으리라 생각된다.

 서해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염원을 대변한 범종각은 오늘도 굳게 입을 다문 채 종각의 울림만 그 옛날의 넘실거림을 회상할 뿐이다.

 들판을 초록의 비단으로 펼쳐놓은 봄의 향연에서 따가운 태양의 열기에 질세라 농부들의 들판 가꾸기에 그들의 땀방울은 비 내리듯 하였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을 만큼의 출렁이는 황금들판의 축제에 풍년가를 부르며 품질의 우수성에 한창 자부심을 느껴보다가 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에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시간을 아마도 이들은 이곳을 찾아와 소망했을 것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혜택으로 펼쳐진 김제평야에서 임진왜란의 수탈지의 장면과 일제시대의 수확량보다 더 많은 수탈의 장이 되었던 아픈 역사의 흔적속에 초라해진 들판과 망해사의 모습은 과연 무엇때문일까?

 심포항은 백합산지로 유명세를 전국에 알리었고 낚시꾼들의 휴가지로 그들의 손맛을 실감하게 하여 서울서도 마다하지않고서 찾은 이곳은 한때 돈을 건져내는 황금포구로 북적거렸던 모습은 이제 너무나 싸늘하다. 포구에 그냥 버려진 양 고착돼버린 배들의 외로움은 주인을 잃은 양 기다림의 끈을 놓을라 말락 하는 건지 흐릿하게 보인다.

 새만금간척사업(1991~2020)일환으로 동진강과 만경강의 배려로 이루어진 심포항의 갯벌은 1980년 오랜기간 사랑을 넘치게 받아 왔었다. 그 갯벌은 전국의 인파를 불러들였고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웃음이자 미래였던 보금자리 같았던 곳이었다. 갯지렁이도 백합도 거침없이 숨을 쉬었고 날아가던 철새들도 머무름을 알았던 갯벌에서 잔치했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바다내음 나는 짠물이 아닌 담수호로 채워져가는 갯벌의 자리에서 김제평야 못지않은 벌판이 이사온다하니 우리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갯벌이 만들어지는데는 8천여년이 필요하다 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지도 형태가 바뀌니 꼬불꼬불한 서해안의 복잡함을 단조롭게 하니 반겨야 하겠지만, 그 단조로운 해안선에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이다. 드물게 망해사를 찾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망해사의 바다의 흔적을 바라보겠는가?

 호남곡창지대를 역사 속에서 지켜온 만큼 우리의 갯벌도 역사와 싸워 좀 더 나은 대안과 해결책으로 지켜내야 함이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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