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혁신도시에 뿌리는 씨앗, 농업유전자원
전북혁신도시에 뿌리는 씨앗, 농업유전자원
  • 이용범
  • 승인 2018.02.21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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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앞으로 지을 농사를 위해 종자를 남긴다는 소리다. 우리 조상들은 베개 속에 종자를 넣어 보관하기도 했는데 이는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시절, 아무리 급한 피난길이라도 베개만 들고 떠나면 어딜 가서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마련한 최소한의 장치였을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종자주권 확보 노력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표현될 정도로 치열하다. 우리나라 토종식물인 ‘수수꽃다리’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킴라일락’이 되어 미국 라일락 시장을 석권한 사실이나 중국이 원산지인 ‘팔각회향’이 ‘타미플루’로 변신해 미국과 스위스에 엄청난 부를 안겨준 사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종자에 대한 중요성은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심화가 예상되는 종자주권 국제 쟁점화의 해결책 마련을 위해 2010년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되면서 자원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개발 국가가 독점하지 않고 자원 보유국과 공유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앞으로 ‘미스킴라일락’이나 ‘타미플루’처럼 ‘재주는 자원 보유 국가가 부리고, 돈은 자원 개발 국가가 챙겨가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2014년, ‘녹색혁명’과 ‘백색혁명’으로 대표되는 50여년의 수원 시대를 마감하고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농촌진흥청은 3년여 동안 새로운 터전을 다지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다져진 터전 위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농촌진흥청 제27대 청장으로 취임한 라승용 청장은 ‘혁신도시 시즌 2’를 선포하고 전북혁신도시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농산업의 지속발전’을 뿌리내리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 알의 씨앗으로부터 모든 농업이 시작되듯이, ‘혁신도시 시즌 2’의 성공을 위해서는 농업유전자원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전자원의 가치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 일제 강점기와 전란을 겪으면서 수많은 고유 유전자원을 아무 대가 없이 외국에 내어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이런 과거를 교훈 삼아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5대 유전자원 보유국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모은 유전자원을 활용하지 않고 보존만 한다면 이는 매달아 놓고 먹지는 않는 자린고비의 굴비와 다를 바 없다.

최근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는 관리하고 있는 31만 여점의 농업유전자원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민간 종자회사, 미생물 산업체 등과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고객이 원하는 특성을 보유한 유전자원을 발굴하고 보급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원이 실질적으로 관련 산업에 활용되고 이를 통해 고부가가치 농산업 발전의 초석을 다진다는 큰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북혁신도시 인근에 김제 ‘민간육종연구단지’와 정읍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등 농촌진흥청 보유 농업유전자원을 활용해 농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산학연 클러스터가 조성되었다.

네덜란드가 세계 종자 산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벌 종자기업과 중견 종자기업, 대학 연구소 및 정부기관이 ‘Seed Valley’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또한 네덜란드의 ‘Seed Valley’처럼 이들 클러스터들이 농산업 발전의 핵심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2018년, ‘혁신도시 시즌 2’의 닻이 올랐다. 전북혁신도시라는 새로운 터전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가꾼다면 머지않아 풍성한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농업이 활짝 꽃필 그 날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이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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