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실시된 연명의료결정법, 기대와 우려
드디어 실시된 연명의료결정법, 기대와 우려
  • 김형준
  • 승인 2018.02.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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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존엄사법’으로 알려진 연명의료결정법이 의료계의 오랜 요청에 따라 어렵게 입법돼 지난 2월 4일부터 시행되었다. 하지만 많은 기대와 달리 아직은 부족한 홍보와 행정편의적인 정부의 관리시스템으로 인해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환영보다는 혼란과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도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연일 해석 지침을 내고 있으나 무책임한 준비부족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만 가중시키고 있다.

 ‘존엄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법적 다툼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는데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이번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진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1997년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회생 가능성 있는 환자의 주치의가 환자 보호자의 집요한 요청에 따라 인공호흡 장치를 제거해 사망에 이르자 대법원은 주치의에게 살인방조죄를 선고했다. 이후 임상현장에서는 회생 가능성 여부와 관계없이 주치의가 인공호흡 장치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행위는 살인죄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려지면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 중단을 환자, 보호자가 요청을 하는 경우에도 의료진이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8년 일명 ‘김 할머니 사건’으로 알려진 소송사건이 발생한다. 말기암으로 회생가능성 없는 의식불명의 ‘김 할머니’의 보호자들이 평소 ‘존엄사’를 원했던 환자의 뜻을 들어 연명치료 중단을 주치의에게 요구하였으나 ‘보라매병원 사건’ 선례를 들어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연명 치료 중단을 법원에서 인정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필요해졌고 의료계, 법조계, 시민사회의 의견을 종합하여 드디어 연명의료결정법이 이번에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번 실시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남겨놓을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건강한 사람도 미리 유언처럼 연명치료의 의사를 작성해 둘 수 있다. 다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 등록해야만 법적으로 유효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암처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중증 질환자가 발병과 치료 과정에서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미리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의향서나 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더라도, 담당의사와 다른 전문의 1인에 의해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을 받아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계획서나 사전의향서가 모두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평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향을 환자가족 2인 이상이 동일하게 진술하면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만약 모든 경우가 불가능하다면,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해 환자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이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해야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적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다만, 통증 완화, 영양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공급(일반연명의료)은 어떠한 경우도 중단할 수 없다.

 그러나 기대하던 법의 실시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대병원은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잠정 거부의사를 밝히고 연명의료 이행여부를 보고하게 돼 있는 국가전산시스템에 불만을 제기하며 개선될 때까지 온라인을 통한 이행서 등록을 잠정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하 국생원)이 마련한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이 불안정해 의료 현장 곳곳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생원은 법 시행 당일 시스템 오픈 전까지도 연명의료기관들에 ‘정보처리시스템’을 공개한 바 없고 구체적인 사전 설명을 일절 하지 않은 채 매뉴얼만 홈페이지에 공지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시스템이 불안정해 먹통이 되기 일 수였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법 시행과 사전의향서, 계획서 작성 등 일체의 홍보활동도 없어 정작 대부분의 연명치료중단 대상자들이 등록하지 못하였으나 정보시스템에 등록하지 않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경우 강력한 처벌(3년 이하의 징역)을 받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지속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말기 환자들이 기존에 작성한 ‘심폐소생술포기서’등은 일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복잡한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하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와 연명치료업무를 담당하는 국생원은 하루빨리 행정 편의적 시스템을 개선하고 대국민홍보에 적극 나서 이러한 문제점을 신속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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