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의 덫(무심코 빌려준 통장에 범죄자 낙인찍혀…)
대포통장의 덫(무심코 빌려준 통장에 범죄자 낙인찍혀…)
  • 최성태
  • 승인 2018.02.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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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통장, 대포차, 대포폰 등이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TV나 신문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포’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대포에서 나는 크고 아름다운 소리를 따서 허세나 허풍이 매우 심할 때 ‘대포를 놓는다’라는 관용구로 사용”되고, “자기 명의로 등록하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 남의 명의를 도용해서 등록하거나 만든 것을 뜻하는 속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몇 달 전 인터넷 게시판에서 ‘통장을 만들어주면 80만 원을 주겠다.’는 게시글을 보고 통장을 개설해서 넘겨 준 사람이 있었다.

 내 고등학교 친구다. 친구가 만들어 준 통장이 사기범행에 이용되었는데, 피해자로부터 편취한 돈이 바로 그 통장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난생 처음으로 경찰조사까지 받게 된 것이다.

 다행히 친구의 상황을 들어보니 사기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피해자와 합의하고 ‘기소유예’를 받아보자!”고 조언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그 사람이 신용불량자인데 입금 받을 통장이 없다고 해서 만들어 줬을 뿐이다. 나도 사기꾼한테 피해를 당했는데 굳이 합의까지 봐야 되느냐?”라고 되물어왔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일면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자기 명의의 통장을 개설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면 법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까?

 먼저 자기 명의로 개설한 통장이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통장을 대여하거나 양도했다면, 범죄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니 통장 명의자에게는 해당 범죄의 방조범(예컨대 사기죄의 방조범)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친구의 경우처럼 범죄에 이용될 것을 몰랐다고 한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경우라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① 접근매체를 양도·양수하는 행위, ②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 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③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 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1호 내지 3호),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같은 법 제49조 제3항).

 여기서 ‘접근매체’란 전자금융거래에 있어서 거래지시를 하거나 이용자 및 거래내용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수단 또는 정보를 의미한다.

 전자금융거래법에서는 구체적으로 ① 전자식 카드 및 이에 준하는 전자적 정보, ② 전자서명생성정보 및 인증서, ③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에 등록된 이용자번호, ④ 이용자의 생체정보, ⑤ 위 ① 또는 ②의 수단이나 정보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비밀번호를 접근매체로 열거하고 있다(같은 법 제2조 제10호 가 내지 마목).

 쉽게 말하면 금융기관의 통장, 비밀번호, 현금카드, 공인인증서 등이 접근매체에 해당한다. 다만 엄밀하게 보면 예금통장에서 접근매체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은 그 통장에 부착된 ‘마그네틱 띠’ 부분이지만, 일반적으로 ‘마그네틱 띠’를 제거하고 통장을 양도하지는 않으므로 통장을 넘겨주는 행위가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의 양도에 해당한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대법원 2017. 8. 18. 선고 2016도8957 판결 참조).

 결국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통장을 양도하거나 대여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와 <통장의 양수인 등이 행한 범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되고,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는 피할 수 없게 된다.

 한편 통장 명의자는 형사책임뿐만이 아니라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책임이나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할 수 있다.

 만약 범행에 이용된 통장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이 있다면,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 없이 재산상 이득을 얻은 것이므로 통장 명의자는 해당 금원을 피해자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부당이득반환).

 다만 대포통장 명의자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에 대하여 최근 대법원은 “통장 등을 양도한 명의자에게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통장 양도 등 방조행위와 피해자의 손해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통장 양도 등 과실에 의한 행위가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ⅰ) 과실에 의한 방조가 피해발생에 끼친 영향, ⅱ) 피해자의 신뢰형성에 기여한 정도, ⅲ)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 방지를 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다소 제한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대법원 2015. 6. 24. 선고 2014다231224 판결 등 참조).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서는 통장 명의자가 통장 양도의 대가를 수령하였다거나 피해발생 및 피해자의 신뢰형성에 기여한 정도가 적지 않다면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가를 수수하기로 하면서 통장을 양도하는 것은 그 통장을 사용하는 사람의 범죄행위를 조력하여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대출금 지급, 취업알선 후 급여이체 등의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통장 자체나 비밀번호, 현금카드, 공인인증서가 필요한 경우는 없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최성태(전주농협·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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