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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자유로운 새
이문수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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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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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후반, 아니 1990년대 중반까지도 전시회를 개최하면 수많은 화우들이 몰려들어 서로서로 축하와 격려를 했었다. 현실은 어두워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지만, 저마다 꿈을 꾸며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미술판에서 내달리던 시절. 전주 동문사거리 근처 지하에 위치했던 “무아무아”는 故 하상용 선생이 큰아들(무아)의 이름을 빌려서 차린 선술집이다. 예술회관에서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열고 뒤풀이 할 때 자주 찾았다. 평소에도 그곳에 가면 취기에 홍조 띤 미술동네 화가들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매일 술에 젖었던 애주가, 깡마른 체구에 거친 턱수염, 날카로운 눈매, 취기를 이용해 거침없이 내 쏘는 ‘입바른 소리’, 한마디로 까칠한 이미지가 선생의 캐릭터이다. 생전에 반골(?) 기질이 강해서 시류에 영합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작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을 끝없이 견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의 순수함과 고운 결, 그리고 열정이 더 선명에 드러난다.

 어느 날, 취기에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필자에게 은은한 미소로 다가왔다. 깡말랐지만, 온기 가득한 손을 맞잡고 “정말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라고. 지금 생각해도 근거 없는 칭찬이지만, 따뜻한 진심이 통했다. 화가를 꿈꾸며 내달리는 필자에게 건넨 위로가 지금도 선연하다.

 2017년 1월, 막걸리와 새를 사랑했던 화가의 작고 20주기 추모식이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열렸다. 고인의 가족들과 선생을 기억하는 미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행위예술가 심홍재 씨는 ‘새는 아직 날고 있다’는 휘호와 함께 한바탕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말한다. “곁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선배는 현실 안에 갇혀 있었지만 자유로움을 갈망했다”라고.

 2015년 8월, 교동아트미술관 초대기획전이 열렸다. ‘나는 새’라는 주제로 유족의 협조로 25점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캔버스를 대신해 도마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캔버스 작업의 경우 화폭에 또 다른 입체적 공간을 덧대 이중적인 평면 구성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2007년 3월, 작고 10년을 맞아 전북도립미술관 도청기획전시실에서 유작전이 열렸다. 심홍재 씨를 주축으로 미술인들이 뜻을 모아 준비했다. 그는 캔버스 대신 도마 나무판을 활용하기도 했고, 캔버스도 이중평면 구성을 하는 등 기존 회화작업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생채기 난 나무 위에 재현적인 새가 아닌 본질을 담아 비, 구름, 꽃 등과 같이 최소한의 배경으로 물질문명 속에서 현대인이 잊고 있는 가치를 되묻는 작품들이다.

 인간의 생존과 탐욕으로 생채기 난 도마 위에 과욕 없이 무심하게 그려 던져 놓은 듯한 새. 거추장스러운 것을 덜어내고, 새를 그린다기보다는 온 마음을 다해 본질만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던 화가.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신령한 존재이기도 한 새는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담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생전에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길 잘했던 사람인지라 어느 날 살며시 문을 열고 “여보 미안해”라고 하면서 나타날 것 같다는 미망인의 말처럼, 선생은 그렇게 세월의 문턱을 넘어 ‘나는 새’가 되어 우리의 가슴 속에 파고든다. 세상과 그림, 둘을 다 부여잡지 못하고, ‘날으는 새’, ‘날고픈 새’, ‘날아가 버린 새’ 만을 붙들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화가였다.

 1994년 초여름, 좋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전북 임실군 “대곡리 미술촌”에 입주(하상용, 최원, 전량기, 이동주, 백종두, 김정식)한다. 폐교를 고쳐서 교실 한 칸에 작업실을 꾸렸다. 자기 죽음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부단한 담금질을 한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작이 그 당시 열정의 흔적이다. 1995년 개인전 주제였던 <있느냐? 날아갔다>는 새를 통해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토해 내었다. 1997년, 답답한 현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한 마리 자유로운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갔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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