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남는 흔적들에 대하여’
‘사소하지만 남는 흔적들에 대하여’
  • 채영
  • 승인 2018.02.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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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사건들에 우리의 시선은 붙잡히기도 지나치기도 한다. 이내 잊게 되는 이 장면들은 가끔 기억 속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러나 그 출처를 더듬는 것은 소모적이다. 사소하기 때문에 이미 잊은 사건과 대상들에 비하면 현대사회의 다른 자극들이 너무나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 사건들을 끄집어낸다. 작가들은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과 그 감각들의 출처를 추적한다. 사건의 장면을 캔버스에 재현하거나 선과 색을 통해 감정들로 표현한다. 입체나 설치작업을 통해 공간 이곳저곳에 그 감각의 재현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아니다. 작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각들을 시각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며 접근해갈 뿐이다.
▲ 한성우 전시 전경
  최근까지 서울의 A-lounge에서 진행되었던 평면조형 작가 한성우의 <땅 위의 밤> 전시에는 로드킬 당한 동물을 스쳐 지나갈 때 지인과 나눈 대화 내용이 출력되어 회화와 함께 놓여 있었다. 화면 위 거친 선들로 두텁게 긋고 칠한 형상은 작가의 복합적인 감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상은 짓이겨진 새의 사체 같기도 하고 갈대 따위가 무성한 풀숲 어느 부분을 그린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대상의 재현이나 감정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어떤 흔적처럼 보인다. 공간에 남은 시간의 흔적들을 화면에 달라붙듯이 그려온 작가에게 이 우연한 사건은 무엇으로 다가왔을까. 지나친 도로 위의 물체가 무엇이었던지 간에 그것은 우리의 감정에 흔적으로 묻는다. 그동안 우리가 이미 무수히 지나쳐온, 보았거나 혹은 들었던, 그 축적된 경험들을 작가는 화면 위 형상으로 붙잡는다.
▲ 소보람 전시 전경
  이는 작년 전주역 근처 명산여관에서 있었던 소보람 작가의 <그vs그것> 전시를 떠올리게 한다.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와 도로 위에서 헤드라이트에 눈이 멀어 멈춰 선 동물의 눈동자의 시각적 경험은 작가에게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감각으로 깊게 각인된 듯하다. 작가의 이 충격은 우리의 삶에서 반복된다. 이 죽음들에 대한 인간의 죄책감이나 분노는 개발에 대한 끝없는 인간의 욕망에 우선하지 못한다. 측은하지만 또다시 무신경해질 죽음이며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곧 사소한 일이 된다. 그래서 전시 공간의 끝에는 결국 동물들을 죽음으로 내몬 인간들의 죄책감을 덮어버리는 가면이 매달려 있는 듯하다.

  두 전시는 지나치고 잊어버렸지만 어딘가에 남아있던 기억을 꺼낸다. 미술은 일상 속 자극들이 뒤덮고 끝없는 욕망의 가면에 가려졌던 흔적들을 드러낸다. 미술을 통해 그 기억들이 깊은 울림이 되거나 우리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이끌 수도 있겠지만 또다시 지나칠 수도 있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채영 공간시은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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