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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은 있지만
장상록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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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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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 없다. 흔히 서구인들의 인식이 그렇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오래 전 북유럽 어느 기차역사에서의 일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는 조금 젊은 백인 남성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얼굴 표정이었다. 불만이 가득한 모습 어디에도 직업에 대한 긍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본 단편을 일반화 시키고자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실에 대한 시각과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신숙주의 아내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던 1456년 1월에 죽는다. 그 날을 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임금이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병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명하여 그 오빠 동부승지 윤자운에게 약을 가지고 가서 구료하게 하였더니, 갑자기 부음을 듣고 임금이 놀래고 애도하여 급히 철선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해 4월 성삼문 등의 옥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연려실기술]에는 신숙주 부인의 행적이라며 이런 기록이 나온다.

  “오늘 성학사 등의 옥사가 있었다 하니 당신도 반드시 그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지가 있기를 기다려서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신이 살아서 돌아오셨습니다.”

  신숙주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이 일화는 명백한 오류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이 신숙주에게 가한 심판의 한 형태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역사적 상황을 판단할 때 사료를 비판적으로 수용해야하는 것은 때로 그것이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지 못한데 있다.

  같은 기록에 신숙주가 단종 비 송씨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다. 사실일까?

  한국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춘향전을 불어로 번역한 인물. 홍종우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김옥균 암살범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는 매국을 하지는 않았다. 신숙주와 홍종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잘못 된 미화(美化)와 폄하(貶下)다.

  남이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유자광에 대한 필요이상의 폄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와 진단에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근거로 이준 열사의 할복을 얘기한다. 이준 열사는 의심할 바 없는 위대한 애국자지만 할복은 하지 않았다.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만든 의도적 오보다. 나는 당시 기사를 쓴 분의 우국충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준 열사가 순국했다는 사실이다.

  여기 조선의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간곡히 쓴 편지가 있다.

  “높은 벼슬이나 깨끗한 직책에 있는 사람, 덕이 높고 학문이 깊은 사람도 의술에 대해 터득하고 있으나 스스로 천하게 의원노릇을 하지 않고 병자가 있는 집안에서 위급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만 처방을 해준다. (중략) 의원노릇을 계속한다면 살아서는 연락도 안 할 것이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하거라. 다시 말도 하지 않겠다.”

  현재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조선의 양반집에서 의원이 되겠다는 아들을 말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쓴 아버지는 누구일까.

  2012년 유네스코는 그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위대한 학자이자 애민정신을 실천한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폐족이 된 두 아들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했을 뿐 아니라 국화나 과채 재배를 통한 소득창출을 얘기할 정도의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아들이 약방을 열어 의원 일을 한다는 소식에 이런 편지를 쓴 것이다.

  정학연은 결국 약방을 접는다. 이 아버지가 다산이 아니라면 우리는 곤혹스러울 이유가 전혀 없다. 성리학적 질서가 지배하는 조선에서 아버지가 당연히 할 얘기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 정약용이라는 사실에 있다. 간과하기 쉽지만 다산은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의 후대임에도 한글로 쓴 저작이 단 한 편도 없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다산이 위대한 학자이자 인문주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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