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의 가르침을 배우자
목민심서의 가르침을 배우자
  • 임보경
  • 승인 2018.01.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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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광화문앞 광장은 봄여름가을겨울 철없이 모이는 곳이다. 나라의 기쁨이 넘치는 날, 아니면 나라의 위태로움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각지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연결해주는 장소 광화문에 집결하여 당연한 권리를 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기억에 나라의 기쁨을 온 국민이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로 더 빛나길 바라고자 한다.

 그런 날이 열리려면 일반인의 마음 자세와 실천의식 그리고 공직자의 청렴도와 올바른 자세를 갖춘 실천이 자연스러운 날이리라 본다.

 탐욕의 정부가 광화문에 모인 국민에 의해 쫓겨나고 새 정부가 열린 지 횟수로 두 해가 되었다. 대통령께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경제생활이 매체를 통해 종종 접할 수 있어 신선하다. 미국의 전 오바마대통령께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경제관념이 예전의 기억에 먼나라 이야기니까 가능했겠지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던 방관자의 처지의 시절이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 1차 개혁안에는 궁내부를 설치하여 왕실이 의정부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끔 분리하는 제도 개편이 있었다. 일제에 의한 갑오개혁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독재와 특정된 세력에 의한 국가의 업무와 재정을 좀더 공정화하기 위한 사항으로 해석하고 싶다. 왕실의 경제와 국가의 제정이 하나라는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유교의 질서와 규칙의 엄격한 조선왕조사회에선 가능한 일이었지만 입헌체제화되는 사회에선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엄연한 질서와 규칙이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공직자로서 공과 사를 너무 구분치 못해 탐욕의 굴레에서 당연시화 되었던 것은 현 정부의 공사구분 실천은 이색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에 왕(대통령)이 있다면 지방에는 그 지방을 대표하는 수령(지방자치장)이 있다. 수령의 권한에는 각 고을의 행정권, 사법권, 군사권과 재정권까지 가진 수령으로서 중앙의 왕권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그의 품성과 행정능력은 백성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자리이기에 그들에겐 공정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목민관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으로서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이익을 개입시키지 않고 사심을 배제하라는 의미이다. 청렴도의 자세로 물질과 색을 멀리하며 공무에 충실할 것을 명시하며 일에 있어 근면성으로 열심히 힘쓰고 노력하는 자세로 신중한 마음가짐으로서 책임있는 언행을 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공무자의 가족에게까지 그 권한을 부여한다는 말은 없었다.

 특정한 목민관에게만 목민심서의 가르침을 권유하는 것은 잘못된 지적이다. 요즘 공무자의 비리와 부정부패, 그리고 공무자 가족의 갑질의 언행을 안타깝게 전해들은바 지금까지 내려온 관행으로 당연화하는 이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약용선생님의 목민심서를 전 국민이 함께 몸에 익혀 봤으면 한다.

 목민심서는 40세에 유배길에 올라 18년간의 유배지 중 강진에서 쓴 책으로 부임(赴任)·율기(律己)·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총 12편으로 되어있다. 이는 지방관리들이 백성을 위해 지켜야 할 덕목으로 임금님에게 임명받아서 취임까지를 다룬 부임편 두번째는 벼슬하면서 청렴함을 가지라는 율기편, 공문서와 공물관리에서 투명함을 가지라는 봉공편,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을 보살피라는 애민편, 교활한 관리를 통솔하고 어진 인재를 추천하는 이전편, 호마다 토지제도 조세제도를 관리하는 호전편, 제사와 의례 외교절차와 백성의 가르침과 과거시험의 중요성을 역설한 예전편, 군역의무와 군사와 무기의 중요성과 변란의 대비법을 다룬 병전편, 법률 소송, 형옥등 형벌을 내릴 때의 신중함을 강조한 형전편, 산림정책, 저수지 관리 건축과 보수관리법을 다룬 공전편, 굶주리고 황폐한 백성을 구하기 위한 구제방법을 다룬 진황편, 마지막으로 해관편에는 부패한 관리를 해임하고 어진 관리는 뜻을 기리기 위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최고의 목민관으로서 곡산관아를 담당하던 시절 그보다 신분이 높은 황해도 관찰사가 방문하여 말하길 시원하게 뱃놀이나 하자고 하자 그는 백성들이 손가락질을 할것이라며 지금은 한창 바쁜 농사철이니 삼가야 한다고 한다. 정약용선생의 올곧은 목민관의 자세를 잘 보인 예로서. “누각이나 정자에서 한가롭게 즐기는 경관 또한 성읍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은 배다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당시 한강에 다리를 만들게 되면 많은 비용과 백성들의 노동력이 동원되어야 함에 백성의 힘듦을 줄여주기 위해 배다리를 설계한 부분에서도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수원화성을 설계함에도 그당시 유행한 실학을 열심히 배워 실생활에 도움이 되게하여 백성의 고달픔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주고자 계획한 거중기 11대의 가치는 10년 넘게 걸리는 공사기간을 1794년에 착공하여 1796년 10월에 준공하였다. 그당시는 궁궐이나 성곽을 지을때는 서민들의 세금과 과중한 노동력의 피땀을 이용하던 시대였음에도 수원화성건축에는 백성의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려는 마음씨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약용선생님의 정치를 올바르게 하여 백성을 평안케하는 애민정신을 실천에 옮기는 자세는 공무수행 핑계삼아 호사누림에 시치미맨들과 가족 공직의 위치를 이용하여 위세를 부리는 죄인에게 일침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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