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만족의 참뜻
고객만족의 참뜻
  • 홍용웅
  • 승인 2018.01.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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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 공공부문을 막론하고 고객만족이란 표현을 참 많이 쓴다. 이걸로는 성에 안 차 고객감동, 고객기절이라는 말도 사용하지만, 언어의 유희일 뿐 본질은 같다.

 고객은 우리말로 손님인데, 정확히는 모종의 거래관계에 있는 손님이다. 민박에 자러 온 사람은 고객이라 불러도, 내 집에 하룻밤 유하러 온 친지를 고객이라 하진 않으니, 고객은 상대방과 거래가 전제된 개념이다. 그래서 기업이나 정부에서 손님이란 용어는 잘 쓰지 않는다. 심지어 식당, 슈퍼에서도 손님 대신 고객이라는 호칭이 성행하니, 동네상권의 가족 같은 풍경은 한낱 빛바랜 추억이 됐나 보다.

 고객만족은 혁신이론에도 등장한다. 피터 드러커는 혁신을 ‘새로운 가치와 고객만족의 창조’라 정의한다. 경제통상진흥원은 이 촌철살인의 명구를 경영지침의 첫 행에 통째로 인용했다. 지방 공공기관인 우리의 지향점을 이보다 더 절절히 나타낸 문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고객은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를 만족시키자는 것인가? 우리 원의 고객은 4개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제1의 핵심고객이자 최종고객은 바로 전북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약 13만에 이르는 크고 작은 사업체를 경영하는 분들이 1차 고객이다. 여기에 장차 창업, 취업을 위해 묵묵히 칼 갈고 있는 청년과 시니어, 다시 말해 잠재적 고객까지 포함하면 그 외연은 전체 도민으로 넓어진다.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기업과 도민이 우릴 외면하면 어찌될까? 끝장이다. 설 땅도, 비빌 언덕도 사라진다. 도민의 세금을 쓰면서 그들의 손가락질 받는 기관이 어찌 존속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제1고객의 심기를 살피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쓴다. 그런 노력에도 왕왕 불만의 목소리를 접하게 되니 낙심천만이다. 정책의 사각지대와 지원에서 배제되는 분들이 상존할 뿐 아니라, 수많은 소상공인의 가려운 곳을 시원히 긁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나마 한분 한분의 고객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 같다.

 제2고객은 도, 중앙부처 같은 업무 위탁자다. 수탁자는 일감을 준 위탁자를 위해 복무한다. 하지만 위탁자와 수탁자가 바라보아야 할 목표는 동일하니, 바로 제1고객인 것이다.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봐선 안 된다. 다시 말해, 도와 진흥원의 최종고객은 공히 도내 기업으로, 수탁자가 고객만족에 실패하면 위탁자 역시 실패하는 공동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진정 위탁자를 위한다면 수탁자는 제1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니, 바로 그것이 제2고객 만족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제3고객은 내부직원이다. 제1~2고객의 만족을 위해서는 제3고객의 창의와 열정이 필수다. 직원들 마음이 돌아서면 양질의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역량개발, 휴식 보장, 동지애가 어우러진 따뜻한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마지막 제4고객은 자기 자신으로, 자중자애라는 말로 간단히 넘어가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우리가 복잡한 문제에 당면하면 ‘의심스러울 땐 고객의 이익으로’라는 잣대를 대면 정답이 나온다. 제1고객의 만족을 젤 앞에 놓으면 핵심이 드러나고 문제해결의 단서가 보인다. 결국 각층의 고객이 갑을 관계가 아닌, 존중과 협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고객만족의 관건이다.

 홍용웅<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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