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친구동네 가보기
걸어서 친구동네 가보기
  • 박성욱
  • 승인 2018.01.18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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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공부 (1)
“민석아! 너 우리 집에 놀러올래?”

“좋아! 그런데 멀어서 우리 엄마가 차로 데려다 줘야해. 엄마한테 허락 받고.”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은 친구 집으로 자주 놀러 다닌다. 집이 몇 평이니 사는 동네가 어떠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친구 가족들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따뜻함이 좋은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 통학구역이 넓다. 학생들이 사는 동네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멀다. 한 동네에 사는 친구들 말고 다른 동네로 놀러 가려면 부모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나 - 가족 - 이웃 - 고장 - 나라 - 세계 순으로 세상을 알아간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위성지도가 정확한 요즘 아이들은 한 발 한 발 내딛고 걸으면서 세상을 익히기 보다는 부모님이 태워주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모니터 화면을 눈으로 보면서 익히는 경우가 많다.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있는 우리 반 아이들. 이번에도 밖으로 나간다.

“애들아 우리 모두 반 친구들이 사는 동네 걸어가 볼까?”

“와! 짱 좋아요!”

이렇게 해서 직접 친구들 동네를 걸어서 가기로 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제일 먼저 강토가 사는 원항가 마을로 갔다. 원항가 마을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는 마을 표지석을 끼고 돌아갔다. 길가에 김장철을 위해 속이 꽉 차가는 배추가 지천이었다. 초록 배추밭이 끝날 때 쯤 왼쪽으로 작게 난 사잇길로 걸어갔다. 콩줄기가 감아도는 울타리를 지나 나지막한 지붕에 감나무 한 그루가 높게 서있는 집이 있었다. 강토네 집이었다. 감나무에 매달린 길쭉한 호박이 있었다. 베트남 호박인데 강토 엄마가 그 호박으로 요리도 해준다고 했다.

“강토야 너는 좋겠다. 베트남 호박 요리도 먹고 …….”

아이들은 처음 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처음 보는 신기하게 보이는 베트남 호박 때문에 강토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강토네 집을 지나 붉게 피어난 꽃무릇을 따라 예사랑 공방을 만났다. 곱게 물들인 황토 염색, 옻 염색 천이 빨랫줄에 널려서 가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고 작다. 마당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귀여운 강아지 소리에 작가님이 나오셨다. 작가님은 작업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알록달록 예쁜 염색 천과 정감 있는 한지 공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출근 길 창가에서 먼 발치에서만 보았던 곳인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 오랫동안 공방을 꾸려온 작가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학교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니 신기하다고 했다. 부모님과 꼭 다시 한 번 와야겠다고 했다. 다음에는 염색, 한지 공예 등을 아이들과 함께 작가님에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꼭 마련해서 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을 잘 하고 가려는데 그냥 보내기가 서운하셨던지 작업하시다가 약간 흠이 생긴 작품인 한지공예 컵 받침을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어 주셨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는 흠이다.

예사랑 작가님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숲으로 향해 걸어갔다. 이름이 재미있는 며느리 밑씻개풀이 빽빽하게 자라난 길가를 지나가다가 큰 밤나무에 다다랐다. 할머니 한 분이 허리를 숙이시고 밤을 따고 계셨다.

“와! 밤이다.”

“애들아 밤들 주워가라.”

아이들은 신발로 나무대기로 조심 조심 밤 가지를 재끼면서 밤을 깠다. 빠른 녀석들은 주머니가 불룩 튀어나올 때까지 밤을 주었다.

예전에는 인심이 두둑한 어른들 정감있고 따뜻한 정으로 동네 아이들을 키웠다. 이런 정이 희미해져 가는 현실이 많이 슬프다.

 

살아있는 교과서란?

사실 내가 진행한 수업은 2학년 통합교과 가을단원에 나오는 동네 한바퀴 수업을 재구성 한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수업 진도 나가기가 빠듯하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님들도 교과서 진도를 다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앙한 지식이 넘쳐난다. 아이들 개인 마다, 학교 마다 기타 여러 가지 교육환경이 각 기 다른 데 똑같은 교과서를 가르치는 수업으로 어떻게 그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교과서를 단지 가르치는 도구로 활용해서 아이들에게 맞게 재구성 하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과서에 맨 뒷 장에 보면 교과서가 출판되고 인쇄된 날짜가 적혀 있다. 그 이후로도 수 많은 지식이 생성되고 있고 교육 환경은 변하고 있다. 그 변화된 환경에 민감하고 반응하고 아이들게 맞게 배움을 재구성하는 교사들이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박성욱 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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