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20> 다산의 교훈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20> 다산의 교훈
  • 이창숙
  • 승인 2018.01.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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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직접 쓴 정석(丁石). 다산초당의 서쪽 절벽에 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덕담을 나누며 앞으로 일에 대해 가늠해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되면 그것 하나로 세상살이를 하는데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광속 시대에는 몇 가지를 더 챙겨야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비단 경제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광속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한해를 설계하면서 매년 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보지만 슬프게도 어리석음은 없어지지 않고 더해지기만 하는 듯하다. 가까운 이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소통의 맛을 느껴보면 조금은 기운이 날 것 같다.

  다산 정약용은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천재로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떻게 소통하였을까? 한번 살펴보자. 유배지에서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살이에도 차(茶)가 있어 부자임을 말하는 글이 있다. “명아주와 비름 같은 나물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저의 곤궁함이 남을 구제할 수는 없지만, 좋은 차(茶) 수백 근이 있습니다. 이에 다른 이의 요구를 들어 주고 있어 부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근심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어린 제자가 자칫 돈버는 일 때문에 세상사는 도리에 어긋날까 걱정이 돼서 말해주는 제자 사랑이 전해지는 글이 있다. 그중 다산의 제자 윤종심 나이 21살 때,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되는 처지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자 그를 따로 불러 써준 글이다.

 “재물이란 본래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천년만년 가는 것이 아니다. 너는 무엇에 네 인생을 걸려느냐? 허깨비 같은 논밭 문서와 오래 못갈 재물이냐, 인간이 걸어가야 할 떳떳한 도리이냐? 사람이 밥만 구하면 밥도 못 먹고, 밥 이상의 것을 구하면 그 이상의 것이 저절로 오는 것이다. 자꾸 셈으로 따져 저울질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못쓰게 된다.”는 내용이다. 참으로 누구나 한번 쯤 고민해 보는 세상 살아가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똑같은 것 같다. 다산이 주옥같은 경제관계의 저술을 남긴 것도 농민의 고달픈 삶을 직접 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직접 연못을 파고 밭을 갈고 차나무도 직접 재배하였다. 또한 차를 직접 만들어 차를 마셨다.

  다산초당에서의 차 생활을 알 수 있는 다산의 시를 보면 “반반하게 청석(靑石) 갈아 붉은 글자 새기니 차 달이는 부뚜막이 초당 앞에 놓여있네, 반쯤 닫은 고기 잎에 불길이 스미고 짐승 두 귀 쫑긋 뚫려 가늘게 연기 나네, 솔방울 주워 와서 새로 숯과 교체하고 매화(梅花)는 불어 없애 늦게 샘물 조절한다. 정기를 삭게 함은 끝내 경계해야하니, 단약 화로 만들어서 신선됨을 배우리라.” 여기서 청석은 강진의 다산 초당 앞에 놓인 평평한 돌이며, 숯을 넣는 구멍을 물고기가 입을 벌려 뻐끔대는 모양처럼 묘사했다. 짐승의 귀처럼 삐쭉 솟은 곳에 구멍이 있어 연기가 빠져 나가게 된다는 화덕을 설명한 글이다. 찻물을 끓이는 땔감은 솔방울로, 숯을 꺼내가며 화후(花候)를 조절한 듯하다. 매화는 떡차를 가루 내어 물에 넣고 끓일 때 생기는 거품을 뜻한다. 또한 차가 정기를 삭게 할 수 있음에 조심해야 하며, 단약을 끓이는 화로를 만들어 신선이 되는 방법을 배울까 라며 마무리하고 있다. 다산의 차 생활은 해배(解配)된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차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훗날 차(茶)무역을 제안 했다. “해남과 강진 등 바닷가 고을에 차가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지방관으로 하여금 그곳에 다른 것을 심지 못하게 하고, 차나무가 무성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차를 만들어 중국의 좋은 말과 바꿔 나라에서 긴요하게 쓰면 충분할 것이다.”는 내용을 『경세유포』에 기록하고 있다. 「각다고(?茶考)」에서는 중국 역대 왕조의 차 전매 정책에 대한 그 규모와 이익, 폐해에 대해 살피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안하여 차를 경제적 가치로 부흥 시키지는 못했지만 차를 통해 이로움을 찾고자 노력했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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