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수필] 정성려의 ‘누름돌’
[신춘문예][수필] 정성려의 ‘누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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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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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름돌 

  그런대로 아담하고 반질반질한 항아리 속에서 노란빛이 어린 오이지를 꺼냈다. 펄펄 뛰는 오이들을 사뿐히 눌러 진정시켜주던 누름돌을 들어내니, 쪼글쪼글해진 오이들이 제 몸에서 빠져나간 물에 동동 뜬다. 항아리 속의 오이는 볕이 들지 않은 음지에만 있어야 하기에 조금은 서먹하지만, 누름돌 무게로 숨을 죽이며 제 몸속 물을 토해내고, 간기가 스며들면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숙성되어 짜릿하고도 오독거리는 맛을 냈다. 이렇게 숙성된 오이를 맛깔스럽게 썰어 참기름을 치고,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그야말로 침이 절로 돌며 식욕을 돋운다. 그래서 오이지는 여름철 내내 우리 집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밑반찬으로 각광을 받는다.

  오이지를 유독 우리 집 식구만 좋아해서는 아닐 것이다. 입맛이 없거나 시간에 쫓겨 바쁠 때는 찬물에 밥을 말아, 빠르고 간단하게 먹는 반찬으로 오이지가 제격이다. 아삭아삭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나는 소리는 옆 사람까지도 입맛을 돋게 해주는 밥도둑이라 해야 맞겠다.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 어디 오이지뿐이겠는가. 깻잎이며 풋고추 등으로 장아찌를 담그자면 누름돌의 역할이 중요하다. 누름돌이 아니면 소금으로 간을 해서 물에 담아놓은 재료들이 동동 떠오른다. 그러면 숙성시키지 못해 제 맛을 낼 수가 없다. 이토록 깊은 맛을 나게 해주는 누름돌이야말로 단연코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지혜다.

  음식솜씨가 좋은 집에서는 대물림한 누름돌 한 두 개쯤은 볼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둥글 넓죽하고 반질반질한 모양의 크고 작은 누름돌이 여러 개 있다. 냇가에 갈 기회가 있을 때면 오이지나 장아찌 담을 때 좋겠다는 생각에 주워온 것들이다. 많은 비가 내려 큰물이 질 때면 물살에 떠밀려 이리저리 나뒹굴며 매끄럽게 갈아지고 널브러져 있던 돌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되어 우리 집에 온 뒤, 그 쓰임새가 생기며 꼭 필요한 존재의 누름돌이 되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다슬기 탕을 유난히 좋아했다. 물이 깨끗하고 넓은 냇가가 집 앞에 있어서 그랬을까?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 할머니께서는 집 앞 냇가에 다슬기를 잡으러 자주 가셨다. 다슬기를 잡아 돌아오실 때는 둥글 넓죽한 예쁜 돌을 하나씩 안고 오셨다. 나와 동생은 다슬기를 잡으러 가는 할머니를 따라 냇가에 가기라도 하면 모래로 집을 짓고 자갈과 돌로 담을 쌓는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예쁜 돌을 많이 주워 모아놓기도 했다. 할머니는 우리가 모아놓은 많은 돌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것 하나만 골라 집으로 들고 오셨다. 그런데 그 돌이 누름돌이었던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어디에 사용하려는 것인지조차도 몰랐다. 우리는 할머니 주위를 깡충깡충 토끼마냥 뛰어다니며 일상적인 놀이로 즐기며 놀았다.

  재료를 지그시 눌러 음식의 맛을 나게 하듯, 사람에게도 묵직한 누름돌이 필요하다. 딸을 출가시킨 지금 돌이켜 보니, 친정어머니는 묵직한 누름돌을 늘 가슴에 품고, 힘들고 어려웠던 삶을 누르고 살았던 것 같다. 아니, 나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 옛날 어머니들은 모두 그랬으리라.

 그 옛날 여자이기에 학교를 모르고 살았으니 교과서에서 배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오롯이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위해 당신 자신을 꾹꾹 누르고 희생하며, 어렵고 힘든 시대를 견디어 내셨다. 누름돌을 가슴에 안고 그 무게로 누르고 삭히며 살았던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내 삶의 지침이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환한 미소를 띤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묵묵히 참으며 지혜를 짜내어 기어코 극복하시던 진정한 승리의 모습으로 동그랗게 내 가슴에 떠오르며 누름돌 하나를 안겨주신다.

  아버지께서는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린 6남매, 그리고 많은 농사일까지 어머니의 몫으로 맡기고, 너무도 서운한 나이 60세에 무정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후 3년 뒤, 할머니도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기가 힘드셨던지, 기력을 잃고 시름시름 하시더니 유명을 달리하셨다. 결국 홀 며느리가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자식 6남매를 가르치며 살아야 했다. 할아버지도 90세가 되면서 서서히 치매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힘든 상황에서도 할아버지는 치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그러는 거라며 나이 탓으로 돌렸다.

 세월이 갈수록 자식과 손자들도 몰라보셨다.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를 모시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수발하느라 얼마나 힘이 부치셨을까? 그래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당신의 멍에로 생각하고 자식들의 등불이 되어 주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셨다.

 내가 역경에 처할 때마다 친정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면 힘들게 느껴지던 고통의 무게가 조금씩 가볍게 줄어든다. 게다가 이겨내야겠다는 용기까지 얻는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면서 장롱 속에 묻혀있던 효행상장을 발견했다. 각각 다른 단체에서 수상한 것으로 4개나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며 가문의 얼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께서 시장에 서너 번 다녀온 것쯤으로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렸고, 의미도 크게 몰랐다. 자식이라면 부모님께 당연히 해야 한다는 도리로 생각했었다. 무심이 바로 무식이란 걸 이제야 알게 해주었다.

 치매를 앓던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농사일로 옆집에 잠시 들려야 하는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하물며 마을단합대회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토록 암울한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며, 시집 온 후 50년을 넘게 시부모를 모시고 사셨던 친정어머니다. 할아버지께서 97세에 돌아가셨는데도, 두고두고 잘못했던 일만 생각난다며 슬퍼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이기에 해냈으리라. 사람이 부대끼면서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든다던데, 우리 친정어머니는 할아버지와 고운 정만 들었을까?

 그런데 난 그토록 지고하신 친정어머니를 닮지 않았나 보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건강하실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중풍과 치매를 앓으면서 본의 아니게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시어머님을 끌어안고 펑펑 울기를 수도 없이 했었다. 막내인 우리 부부가 책임을 떠맡은 것 같아 가슴앓이를 많이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것이 덕이 되었고, 딸자식들에게는 산교육이 되었으련만, 그때의 처지를 한탄하며 힘들어 했던 일이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하다. 어찌 내게는 가슴을 누르고 삭혀주는 누름돌이 없었던가.

  우리의 전통적 토속음식은 대체로 장시간 삭혀서 맛을 낸다. 시간이 흐르면서 곰삭아 깊은 맛이 들고 발효되어 양약보다 더 좋은 효능을 인정받지 않던가.

 요즘 내게도 묵직한 누름돌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라도 감정을 꾹꾹 눌러 줄 수 있는 누름돌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겠다. 항아리 속의 시퍼런 오이를 지그시 눌러 삭혀서, 깊은 맛을 내어 오이지로 탄생시키는 것처럼, 진정한 좋은 사람의 향기를 숙성시켜주는 누름돌 하나쯤 가슴에 꼭꼭 품고 살고 싶다.

 
   ▶ 당선 소감 정성려씨(58)

 흥분 된 감정을 누르며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하던 일을 마치고 이 기쁜 소식을 남편과 딸들에게 먼저 알렸다. 그리고 육남매 내 동생들과 좋은 일 힘든 일을 공유하는 단체 카톡 방에 올렸다. 딸들과 동생들의 축하 메시지가 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기쁨에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자꾸 흘러내린다. 엄마 생각이 앞선다. 동생들도 기쁜 소식에 나처럼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먼저 난 모양이다. 카톡 내용에서 그렁그렁 눈물 맺힌 동생들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작은 동생은 당장 친정어머니 산소에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 오겠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수필을 알게 되었다. 수필은 내 인생 봄날의 시작이었다. 수필을 배우겠다고 평생교육원의 문을 들어서고 오랜만에 쓴 첫 작품을 문우님들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첫 작품이 제대로 된 수필도 아니었지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부터 열정이 생겨 일기 같은 어설픈 수필을 마구 썼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누에고치처럼 내면의 실을 줄줄 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이다. 문우님들의 칭찬의 힘이었다. 칭찬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걸 느꼈다. 한 때 다른 일에 치우쳐 바쁘다는 핑계로 수필을 쓸 생각도 않았던 때도 있었다. 수필을 알게 되어 노후에 수필세상에서 즐겁게 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힘이 있었다. 믿고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 남편, 넉넉하지 못하고 부족하기만 했을 터지만 착하게 커준 네 딸들, 변함없는 애정으로 서로 의지가 되었던 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누름돌의 수필을 낳게 한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아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다면 무척이나 흐뭇해하실 거다. 항상 응원으로 힘이 되어주신 분들과 가슴 벅찬 기쁨을 함께 하겠다.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교수님과 문우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부족한 글이지만 뽑아주신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린다. 제가 모든 분 들게 보답하는 일은 문학세계에서 더 품격 높은 수필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 심사평 김학 수필가

 2018년도 신춘문예 수필부문 응모작은 97명이 보내 준 302편이었다. 수필로만 따져서는 수필집 5권 분량이었다. 응모작 편수는 지난해보다 조금 늘었다. 이 정도면 예선에서 가려 10여 편 정도를 최종심에 올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 모두를 읽어보아야 하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응모자의 분포는 전국적이었고, 해외에서는 뉴질랜드와 캐나다, 일본 등 지구촌에서도 응모했다. 응모자들은 나름대로 꿈을 키우며 심사숙고하여 창작을 했을 것이고, 저마다 당선의 꿈을 키우며 다듬고 다듬어 응모했을 테니 한 편 한 편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응모자들은 저마다 2편에서 4편까지 보내주었고, 응모작 겉표지에 응모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보내주었다. 그런데 응모자 주의사항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는지 응모작품에 인적사항을 기록한 이도 있고, 응모작 매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있으며, 활자크기도 10포인트로 인쇄를 하여 보내준 이들이 있어서 아쉬웠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려면 신문사가 요구하는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고 응모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수필작품의 수준은 비교적 높아진 편이었다. 소재가 광범해졌고, 간결하고 부드러우며 쉬운 문장으로 다듬어져,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작품들 중에서 단 한 편을 뽑아야 하는 일이 고역이었다. 응모작들은 저마다 작품제목만 볼 수 있을 뿐 응모자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전체 응모작 302편의 수필 중에서 1차로 15편을 뽑고, 그 15편 중에서 다시 10편으로 압축했다. 그 10편 중에서 또다시 5편을 뽑았다. 최종심에 오른 수필은 「무현금」「이쁜 선생이 왔네」「내 눈 속에 아이를 넣어 주오」「누름돌」「양면시계」등 다섯 편이었다. 이 다섯 편을 읽고 또 읽은 결과 「누름돌」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누름돌」은 구성이 탄탄하고, 문장이 매끄러우며, 형상화와 의미화가 잘 이루어져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작품었다. 무엇보다도 오이지를 담글 때 사용한 누름돌과 치매 걸린 홀시아버지를 모신 친정어머니를 대비하여 감동을 자아낸 인생이야기였다. 이 작품이 심사자의 마음을 끌었다.

 수필은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글임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며, 정의 문학, 겸손의 문학임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드리며, 간발의 차이로 밀린 응모자들에게는 더욱 정진하여 다음 기회를 대비하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학 심사위원 프로필

 1980년 월간문학 등단 /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역임, 현 신아문예대학 수필전담교수 / 한국수필상, pen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수필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수필아, 고맙다』『쌈지에서 지갑까지』등 수필집 14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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