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맥불변(菽麥不辨)의 자세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자세
  • 임보경
  • 승인 2017.12.21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해보다 추위가 성큼 찾아와 전국은 롱패딩의 열풍을 이루고 있다. 밤길에도 훤한 대낮에도 롱패딩의 모습은 추워진 겨울의 상징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산에 오르다 보면 가끔 때아닌 진달래나 천변가의 노란 개나리꽃을 신기하게 발견한다. 우리는 너나없이 강추위를 이기기 위해 롱패딩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을 못하고 저리 철없이 피어 있다. 잠깐만이라도 우리에게 봄의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이 추위에 얼지 않으려나 걱정이 된다.

 현대사회에선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에 비유하여 숙맥불변(菽麥不辨)과 관련된 고사성어를 소개해 보려 한다. ‘쑥맥’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콩(菽·콩 숙)과 보리(麥·보리 맥)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우리는 ‘숙맥’이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즉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나 순진무구한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요즘 숙맥이 ‘순수한 사람’ ‘재미없는 사람’이란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사속에서 숙맥불변의 고사성어 출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중에서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사악한 것은 배척하려는 위정척사의 사상이 주를 이룬 반면에 전국시대에는 주왕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형상으로 약육강식의 시대가 열리는 하극상의 현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춘추시대 <좌전>에 의하면 진나라의 여공이 신하에 의해 살해되자 양공의 증손자인 도공이 왕이 되었다. 그런데 똑똑한 도공에 비해 도공의 형은 우둔하여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여 형과 동생의 무지의 차를 비교하면서 사람들이 숙맥이라고 칭하며 어리석은 사람을 일컬을 때 표현하였다.

 콩과 보리의 모양은 확연하게 다른데 비교대상이 될 만큼 도공의 형은 정말 어리석었을까?

 우리의 역사속에서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세조 수양대군의 참모이자 예종과 성종에게 두 딸을 왕비로 보내 세상의 권력을 다 쥐게 되고 권모술수에 강한 1인자의 어두운 모습에서 압구정 정자에서 그의 과시력을 보인 모습에서 중국 사신들이 감탄에 감탄을 멈추지 못할 정도의 대단한 권력을 가진 1등 공신 한명회 그럼에도 그의 손자인 한경기(1472~1529)는 그에 비해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선택한 한경기는 벼슬에도 뜻을 두지 않으며 할아버지의 위세에 부유한 삶을 누렸을 인물인데 할아버지의 비정한 삶을 알고부터 허무주의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한명회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유교사상과 아무 상관없는 반면에 손자인 한경기는 오히려 깨끗한 삶을 선택하여 생육신중 남효온 같은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그 당시로써는 바보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으며 숙맥의 예로 본다. 한경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도 과연 숙맥이라고 표현함이 맞을까 싶다.

 두 번째 조선의 예종의 아들이자 세조의 손자인 제안대군(1466 세조 12)∼1525(중종 20)은 예종의 죽음으로 왕위 후보 1순위이었으나 어린이유로 조카인 성종이 왕에 오르자 제안대군은 글짓기를 하며 살아가는데 조강지처에 대한 애정과 이혼 그리고 재혼을 하였으나 여자 보기를 꽃처럼 여기며 사람 자체로 존중을 해주었다는 예이다. 그의 노비였던 장녹수 또한 연산군에게 발탁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제안대군의 처지가 짐작되지 않은가 싶다. 『패관잡기』에는 그를 평가하기를 “성품이 어리석다.”고 나온다, 한편으로는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감춘 것”이라는 또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결국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실세력과 훈구세력의 각축 속에서 보존과 조용함을 선택한 안타까운 인물임은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중종시절 삼사의 사헌부 출신인 김저의 아들 김여경에서도 위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 김저는 아들이 없어 김여경을 양자로 들이게 된다. 친부모는 아니지만 친아들로 받아들여 장차 과거에 뜻을 두고 가문의 영광이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당시 아버지는 직급은 낮아도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인물로 그 관직이 주는 파워는 대단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들은 과저시험도 치르지 않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버지와 완전 다름의 삶을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결혼을 하고서도 후사를 생산하는데 별관심이 없음을 보고서 사람들은 숙맥이라고 부르곤 했다 한다.

 도공의 형, 한경기, 제안대군, 김여경은 과연 숙맥이라고 말할 만큼 어리석은 인물이었을까? 묻고 싶다.

 앞에서 살펴본 숙맥불변의 예시의 인물을 통해 그 시대의 상황이나 처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기가 모시는 왕의 입지를 드높여줌에 자신의 높음을 낮출 줄 아는 처세의 문제로 생각해 본다.

 정치인들의 언행에 우리는 숙맥불변에 비유한다. 장기간의 국내 경기침체와 외교적인 고립과 갈등의 난세에 어떻게 처세하는 것이 숙맥불변 본래의 의미를 계승할 것인가를 성찰과 수행을 통해 실천해줬으면 한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