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으로 하는 공부
김장으로 하는 공부
  • 진영란
  • 승인 2017.12.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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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의 1학년은 우리네 조상들의 삶의 리듬을 따라 배웁니다. 유난히 겨울이 긴 진안에 있는 학교여서 겨울채비를 단단히 해 보기로 했지요. 겨우내 먹을 양식을 저장하는 과정 자체가 삶이며 공부니까요.

 여름 방학이 끝나자마자 배추를 심기로 했습니다. 여름내 우리를 배부르게 해 주었던 토마토, 오이밭을 정리하고 밭을 가꾸어서 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때 아닌 장마가 계속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부랴부랴 배추를 심었어요. 아이들은 배추를 심으면서
 
 왜 떡잎이 있어요?

 이 작은 잎이 어떻게 큰 배추가 되어서 김치를 담그나요?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 궁금증을 알아보기 위해 무씨를 심어서 떡잎을 관찰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배추밭에 나가서 배추가 자라는 것을 관찰해 보기로 했어요

 처음에 여섯 개였던 배춧잎이 커지고, 잎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부지런히 관찰하던 중,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배춧잎을 자세히 관찰하던 아이들이 소리 칩니다.
 “선생님, 여기 벌레 있어요! 배추흰나비 애벌레인가봐요!” “어디, 어디?”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몸 빛깔이 거므스름한 것을 보니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아닌데 아이들은 벌레를 소중히 손바닥 위에 옮기더니 교실에 데리고 옵니다. 벌레가 무서웠던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겨레가 교실에 오면서 내 팔을 잡아 끌면서 말합니다. “선생님, 저도 배추흰나비 애벌레 잡아주세요.”

그 모습이 기특해서 그러마고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집에 가려던 겨레가 고개를 떨구고 토라져 있습니다. 기어코 애벌레를 집에 데려가야한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이 천둥번개가 치는데 애벌레 잡기 위해 배추밭을 헤맸답니다. 천둥번개를 뚫고 애벌레 두 마리를 손에 넣은 후에야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갔지요.

 그 이후로도 우리는 배추밭에 가서 애벌레를 관찰하면서 가을을 보냈어요. 배추밭에서 데려온 애벌레로 교실이 가득합니다. 애벌레는 우리가 공부할 때 종이컵 둘레를 부지런히 기어다니다가 배춧잎을 뜯어 먹다가 잠이 듭니다. 그러면 번데기가 될 준비를 마친 겁니다. 배추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는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답니다.

 서리가 내리고, 배추에 하얀 서리꽃이 피었을 때에도 우리는 배추밭에 갔습니다. 얼음을 깨며 배춧잎에 내려앉은 서리꽃을 루페로 관찰했지요.
 드디어 김장할 때가 왔습니다. 가을 내내 우리가 키운 배추를 뽑습니다. 배추가 꽃보다 예쁘네요. 반으로 쩍 갈라 왕소금을 착착 뿌립니다. 배추 숨이 죽을 때까지 무랑 갓을 뽑아 채를 썹니다. 칼을 쓰는 어려운 일은 4학년 언니오빠들 몫입니다. 우리 1학년은 김칫소에 넣을 사과 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학문제를 풀었습니다. 김칫소에 넣은 사과보다 날름날름 먹은 사과가 더 많아 김칫소 재료가 쉬 모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다 공부니까요.

 절여진 배추에 김칫소를 채웁니다.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되는 어려운 작업을 잘도 합니다. 김치가 버무려지기 전에 먹는 김치 맛이 일품이지요. 평소에 김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서로 먹어보겠다며 줄을 섭니다. 겨우내 먹을 양식 한 쪽, 집에 가서 엄마 아빠랑 나눠먹을 김치 2쪽, 전교생이 보쌈으로 먹을 김치 한 쪽씩을 야무지게 바릅니다.

 1학년이랑 4학년이 심고 가꾼 배추로 학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김치 한 쪽에 수육 한 점씩 올려 모두 맛나게 먹습니다. 배추 농사로 배움이 풍성합니다. 온 학교가 행복합니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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