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의 1학년은 우리네 조상들의 삶의 리듬을 따라 배웁니다. 유난히 겨울이 긴 진안에 있는 학교여서 겨울채비를 단단히 해 보기로 했지요. 겨우내 먹을 양식을 저장하는 과정 자체가 삶이며 공부니까요.
여름 방학이 끝나자마자 배추를 심기로 했습니다. 여름내 우리를 배부르게 해 주었던 토마토, 오이밭을 정리하고 밭을 가꾸어서 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때 아닌 장마가 계속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부랴부랴 배추를 심었어요. 아이들은 배추를 심으면서
이 작은 잎이 어떻게 큰 배추가 되어서 김치를 담그나요?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 궁금증을 알아보기 위해 무씨를 심어서 떡잎을 관찰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배추밭에 나가서 배추가 자라는 것을 관찰해 보기로 했어요
처음에 여섯 개였던 배춧잎이 커지고, 잎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부지런히 관찰하던 중,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배춧잎을 자세히 관찰하던 아이들이 소리 칩니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그러마고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집에 가려던 겨레가 고개를 떨구고 토라져 있습니다. 기어코 애벌레를 집에 데려가야한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이 천둥번개가 치는데 애벌레 잡기 위해 배추밭을 헤맸답니다. 천둥번개를 뚫고 애벌레 두 마리를 손에 넣은 후에야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갔지요.
그 이후로도 우리는 배추밭에 가서 애벌레를 관찰하면서 가을을 보냈어요. 배추밭에서 데려온 애벌레로 교실이 가득합니다. 애벌레는 우리가 공부할 때 종이컵 둘레를 부지런히 기어다니다가 배춧잎을 뜯어 먹다가 잠이 듭니다. 그러면 번데기가 될 준비를 마친 겁니다. 배추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는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답니다.
서리가 내리고, 배추에 하얀 서리꽃이 피었을 때에도 우리는 배추밭에 갔습니다. 얼음을 깨며 배춧잎에 내려앉은 서리꽃을 루페로 관찰했지요.
절여진 배추에 김칫소를 채웁니다.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되는 어려운 작업을 잘도 합니다. 김치가 버무려지기 전에 먹는 김치 맛이 일품이지요. 평소에 김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서로 먹어보겠다며 줄을 섭니다. 겨우내 먹을 양식 한 쪽, 집에 가서 엄마 아빠랑 나눠먹을 김치 2쪽, 전교생이 보쌈으로 먹을 김치 한 쪽씩을 야무지게 바릅니다.
1학년이랑 4학년이 심고 가꾼 배추로 학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김치 한 쪽에 수육 한 점씩 올려 모두 맛나게 먹습니다. 배추 농사로 배움이 풍성합니다. 온 학교가 행복합니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