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史官), 그대를 비판하다
사관(史官), 그대를 비판하다
  • 장상록
  • 승인 2017.12.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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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얘기 하나다. 박제된 양반. 어쩌면 나는 그 마지막 주변을 산 사람이다. 증조모를 비롯한 집안 할머니 대부분은 ‘울산 김씨’, ‘너브실 기씨’, ‘홈실 박씨’와 같은 호남 명문가 출신이었다. 일유제 장태수 선생과 일송 장현식 선생에 대한 존경의 마음만큼이나 사진 속 증조모에 대한 기억이 남다른 이유다. ‘치마양반’이란 표현이 있다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미당 서정주는 지역감정 해소와 관련 이런 언급을 한다. “이조시대까지 영남에 양반출신이 많았고 호남에 중인이하가 많았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선 안될 것이다.” 이 발언은 “양반론” 논란으로 비화한다. 서정주의 본의와는 무관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양반 중심의 영남과 중인이하의 호남이라는 대립구도가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서정주가 그렇게 말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잠시 조선 당대의 시선을 살펴보자.

  효종의 장인이기도 한 장유(張維)는 [계곡집(谿谷集)]에서 이렇게 얘기 하고 있다.

 “호남에서는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이 일어난 뒤로 명인들이 뒤를 이어 나와 문학이 왕성하게 흥기하였는데, 풍습이 아름다운 면에서는 혹 영남에 뒤떨어지는 점이 있을지 몰라도 세상에서 다사(多士)의 지역을 일컬을 때에는 이 지방을 빼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장유는 영남과 호남 그리고 호서의 3개도야말로 인재가 모여 있는 곳이고 문헌이 집결되어 있는 국가의 근본이라 말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장유가 영남과 호남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말하면서도 호서에 대해서는 영호남의 좋은 점만을 발전시켰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장유의 얘길 들어보자.

 “그런데 세도가 결딴이나 사설(邪說)이 일어나면서부터 패거리들끼리 결탁하여 분규를 일으키고 공격을 가함으로써 선류(善類)가 용납될 곳이 없게 만든 결과 나주와 전주 사이의 지역 태반이 귀신과 도깨비의 소굴로 바뀌고 말았다.” 장유가 이렇게 말한 근거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호남엔 중인 이하가 많이 살았다’는 서정주의 주장이 왠지 공허하다는 것이다. 훗날 누군가는 서정주의 발언을 근거로 ‘호남중인론’을 주장할지 모른다.

  장유의 기록을 살펴보는 오늘 우리에게 이 부분은 중요한 울림 하나를 던져준다.

 [인조실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풍 부원군 장유가 예조에 단자를 올리기를 ‘외아들 장선징이 있는데 강도(江都)의 변에 그의 처가 잡혀 갔다가 속환되어 와 지금은 친정 부모 집에 가 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이 뒤로는 사대부집 자제는 모두 다시 장가를 들고, 다시 합하는 자가 없었다.” 장선징은 인선왕후의 오빠다. 문제는 그 처가 병자호란으로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장유는 성리학의 완고함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포용했고 최명길과 함께 주화론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비록 인조반정에 참여했지만 자신이 주군으로 모신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데 참여한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아무런 잘못 없이 전화에 희생된 자신의 며느리를 매몰차게 내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장면이다. 자신의 며느리와 아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을 하고 상처 입은 당사자를 위로해야할 사람들의 적반하장이 아닌가.

  직필을 본분으로 하는 사관은 이에 대해 어떤 얘길 남기고 있을까.

 “절의를 잃은 부인을 다시 취해 부모를 섬기고 종사를 받들며 자손을 낳고 가세를 잇는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아, 백 년 동안 내려온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리고, 삼한을 들어 오랑캐로 만든 자는 명길이다. 통분함을 금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관을 통렬히 비판한다.

 서정주와 장유 그리고 사관. 그들이 남긴 말과 기록은 역사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사관에 대한 내 혹독한 평가는 훗날 내 글에도 똑 같은 잣대로 적용될 것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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