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자
약속을 지키자
  • 김종일
  • 승인 2017.12.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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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베트남에서 돌아왔다. 요즘 개도국으로부터 태양광발전소의 수익성 검토 자문이 가끔 들어온다. 초기 투자비용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조건에 따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베트남 정부의 태양광발전 육성책이 확정되어 발표되었다. 눈에 띄는 대목을 보면, 향후 태양광발전소를 일반 토지에 건설하는 것을 금하며, 건물의 지붕 위에 설치하는 경우 20년 동안 kWh당 약 100원에 정부에서 의무 구매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태양광발전에 의한 직접적인 수익은 약소하지만, 다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규모에 따라 투자를 검토해볼 만한 정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장기적인 관점에서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기회로 현지 부동산 취득에 초점을 두었던 투자 목적이 이제 무효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붕 위에 설치하는 경우, 열대 지역 건축물의 구조가 우리와 현저히 달라 시공 방법과 비용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 또한 현지 공조직의 협조가 더더욱 요구되는 만큼 공조직과의 협력관계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부패가 만연한 사회인지라 사업 수행에 필요한 협력관계 유지에 소요되는 비용이 사업 성패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약속의 준수 여부이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대개의 개도국 사람들은 약속을 잘 안 지킨다. 지금까지 여러 번 겪었지만, 소위 ‘학을 뗀다’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일 게다. 약속은 잘하지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아예 없는 듯해 보일 정도다. 이번 방문에서도 지켜지지 않는 약속 때문에 헛웃음을 속출하는 몇 차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필자를 초청한 현지 사업가의 ‘진절머리가 난다’라는 말이 매우 적확한 압축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번에 그 사업가는 날짜를 지켜야 하는 수출품의 선적이 관청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연기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저러한 난관에도 현지에서 태양광 사업에 반드시 진출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 필자로선 내심 부러웠다.

 타국에 나가면 다들 그러하듯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모습을 우리의 것과 비교하게 된다. 이번 방문 중 하룻저녁은 약속을 주제로 하는 대화를 하였다. 대화 도중에 한 포탈을 검색해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 서술된 약속의 정의는 이렇다.

 약속 : 다름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뭔가 어색하다. 먼저 꼭 타인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유형 또는 무형의 객체와의 약속도 약속이니만치, 약속의 대상을 다른 사람으로 한정한 대목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또 앞으로의 일을 미리 정하여 두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합의가 꼭 포함된 만큼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허술하다. 이 정의에 따르면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 분명히 많은 사람의 중지를 모은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개도국에서의 약속의 정의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과거 그랬었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쑥스러운 과거가 말해주듯 시간이나 약속 관념에 꼼꼼치 못했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숙함에 따라 약속에 준엄성과 엄밀성이 더해져서 오늘날 민간 차원에서의 약속은 선진 반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허물이 된지 오래다. 약속이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가 그 사회 문명화의 척도로 본다면 우리 민간 사회는 거의 흠잡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민간 부분과는 달리 공적인 약속은 여전히 코리안 타임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큰 요인으로 정치와 공적부분을 지칭하는 원인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일 것이다. 약속의 준수보다도 파기 후의 뻔뻔함과 능란함이 정치적 역량으로 간주할 정도이다.

 내년이 지방 선거다. 우리 대학에도 새로운 총장 선거가 있다. 선거에 반드시 따르는 것이 공약이니 앞으로 많은 공약들이 넘쳐날 것이다. 공약이라 함은 누가 시켜서 한 약속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약속이다. 공적 약속을 스스로 만드는 것은 자유일 수 있으나 그것의 준수 여부는 자유가 아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시쳇말로 달콤한 공약으로 꼬드겨 당선된 다음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분명 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다음 선거에서는 차후 공약의 거창함이나 화려함보다는 지난 과거의 공약이 얼마나 성실히 잘 지켜졌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하겠다. 도리가 없어 지키지 못한 공약은 그 까닭을 매우 엄밀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정치를 비롯한 우리의 공적 부분에서의 약속이 우리 일상생활에서의 약속만큼만 지켜진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으로 거짓말하고 사기 친 작자를 우리의 지도자로 둘 수는 절대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스스로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김종일<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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