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흐트러진 상을 치운다
누군가는 흐트러진 상을 치운다
  • 이문수
  • 승인 2017.12.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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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년간 전북도립미술관이 주력해 온 아시아현대미술전의 막을 내린 지난 3일, 불현듯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생각났다. “잔치는 끝났다/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마침내 그도 갔지만/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그 모든 걸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리란 걸/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고쳐 부리리란 걸/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잔치란 기쁜 일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이다. 아시아현대미술전은 한바탕의 미술잔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좋은 일에는 탈이 많기 마련이다.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 움직이니까 뭔가에 부딪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증거라 생각하면서 넘고, 돌고, 더러는 정면으로 돌파해서 해결해 왔다. 참으로 바쁜 날들을 보냈다. 지금은 미술잔치에서 흐트러진 상을 치우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진지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부르다만 노래’를 고쳐 불려야만 한다. 생동감 있고 야성이 넘치는 아시아 미술가들과 연대하면서 전북미술을 아시아로 나가게 하는 판을 제대로 깔아야 한다.

 내년 4월에는 베이징 쑹좡의 미술가들과 전북미술가들이 교동아트미술관에서 기획전을 갖는다. 더불어 쑹좡 현대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특강도 한다. 거대한 규모 속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중국현대미술의 동력이 우리 미술판을 자극할 것이다. 10월에는 쑹좡 국중미술관에서 초대 기획전에 전북미술가들이 참여한다. 전북미술이 중국 정부가 2005년부터 해마다 국제적인 행사로 열고 있는 쑹좡예술제에 첫발을 내디딘다.

 내년 7월에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과 전북미술이 만나는 <변방의 파토스> 전을 개최한다. 파토스란 정념·충동·정열 등을 말한다. 로고스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이성적인 판단과는 다른 근원 충동이다. ‘변방의 파토스’는 창조성과 생명력의 원천인 변방의 개념과 예술적 정념과 열정을 포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디렉터와 연계해서 쉽게 접하기 힘든 질박한 변방의 현대미술을 불러들인다. 이것은 역동적인 아시아 미술을 주체적인 시각에서 모으고 연대하는 마당이 될 것이다.

 아시아 현대미술은 서구의 거대담론으로 재단할 수 없는 강력한 힘과 다양함을 가지고 있다. 이미 수많은 스타일의 작품이 존재한다. 수직적인 거대담론을 넘어선 현대미술은 창작하는 이유가 다양하고,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가지 개념들이 뒤섞여 있다. 어느 한 방향이나 경향을 견지하는 동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미술가 개인이 단위가 되어 갖가지 이론과 형식을 창의적으로 선택하고 조합해서 제시하고 있다.

 요즈음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은 <음식사냥> 展 준비에 분주하다. 음식을 주제로 미술가 개인의 삶이나 시대를 반영한 기획전이다. 음식의 근원적인 질문으로 출발해서, 음식 자체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 그리고 음식에 얽힌 사람살이를 담담하게 녹여내고 있다.

 인류 최초의 걸작은 음식을 사냥하기 위한 간절한 염원과 사유를 담은 동굴벽화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벽에 선명한 안료와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 초원을 달리는 말과 황소, 그리고 매머드와 사슴, 그 안에 손바닥으로 자신의 존재를 새겼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본능이자 숙명이다. 배가 고파서 먹고, 더러는 눈으로 즐기기도 한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음식은 행복하다. 하지만, 음식을 사냥하는 일은 살아 있는 것을 해하고 취하기 때문에 다분히 폭력적이다.

 ‘음식사냥’ 展은 음식에 대한 예술적 아포리즘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음식을 낯설게 맛보고, 신선하고 자유로운 현대미술을 만끽하자. 또한, 살기 위해 음식사냥을 멈출 수 없는 인간은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더 적은 폭력으로 살아가는’ 자발적 자기반성도 기대한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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