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성과 보편성의 경계
특수성과 보편성의 경계
  • 최은희
  • 승인 2017.12.0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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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은 한국 클래식을 알리는 몇 안 되는 아이콘 중 한 명이지만 그에게도 논란과 비판의 꼬리표는 따라붙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 해고사태에 맞서보고자 정명훈을 찾아가 호소해봤지만 ‘의외의’ 훈계만 듣고 말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에게 쏟아졌던 비난과 비판, 그리고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이끌면서 불거졌던 논란이 그렇다.

여기에는 상식적이지만 두 가지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 하나는 예술인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거장이라 해도 세금으로 녹을 받는 사람이라면 합당한 책무가 따른다는 점이다. 간단한 문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논란의 진행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사자가 거장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의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으로 있던 정명훈은 일방적으로 퇴진압력을 받다가 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단원 노조의 조력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노조의 덕을 본 셈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정작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한 예술인 집단의 호소에는 당치도 않은 훈계와 냉대로 대했다는 것은 모순이며 충분히 논란을 자초할 만한 일이었다. 이를테면, “노동의 가치에 둔감하더라도 거장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거장이라는 존재의 특수성이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지닌 보편적 가치를 예외적으로 압도할 수도 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과도한 대우를 받아도 거장이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라는 의견도 마찬가지다. 서울시향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정명훈의 월급과 비행기 티켓도 세금으로 지급됐다. 마땅히 일반적인 시민 눈높이에 맞는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물론 거장이기 때문에 후한 대접을 해서라도 모셔오는 건 납득할 수 있고 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장의 특수성이 허용될 수 있는 선은 거기까지다. 불투명한 세금 집행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편타당한 의견까지 무시될 만큼은 아니다.

얼마 전 도의회에서 공립예술단과 관련한 세미나가 있었다. 단원의 개인교습 활동을 허용해야 하는지 논쟁이 있었고, 단원은 예술인인지 노동자인지 경계도 모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함흥차사인 도립국악원 민간 원장 도입에 대해서는 단원들 사이에 오히려 거부감이 형성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내 생각은 이렇다. 공립예술단원은 공무원연금 혜택을 받는 공공기관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사적인 교습활동을 허용해달라는 것은 일반인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여기에 예술인의 특수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예술인이니까 개인 기량 연마하라고 퇴근도 빨리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는가. 예술인의 특수성은 이미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인의 특수성을 내세워 교습까지 허용하자면 누가 이해해줄지 모르겠다.

공립예술단원은 예술인이면서 노동자다. 둘 중 어느 하나에만 속하지 않고, 두 정체성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도 엄마이면서 부인이고 도의원이면서 누군가의 친구다. 단원들은 예술인으로서 활동할 권리가 있고 노동자니까 당연히 노조를 결성해서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예술인의 특수성이 공립예술단원으로서의 책무보다 우선할 수 없고, 노조의 파워가 도민 눈높이를 벗어난 권리를 주장하는 데 동원돼선 안 되며 공립예술단의 혁신을 저지하는 방패막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민간예술단이 아닌 바에야 예술인의 특수성과 자유로움은 일정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 주장과 함께 공립예술단원으로서의 보편타당한 책무에 대해서도 균형 있는 성찰을 해주었으면 한다.

 최은희 / 전라북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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