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박준승 선생은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애국민중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상복을 입기 시작하였다. 이후 천도교의 대표로서 활동하며 민중을 돌보던 박준승 선생은 33인 민족대표로 선임되며 3·1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성명하게 된다. 선생은 이에 옥고를 치르시다 1921년 3월 23일 끝내 운명하시고 만다. 박준승 선생은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게 된다.
박준승 선생 추모공원은 전체 1,540m2 면적의 부지에 추모비, 기념광장 등이 건립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에는 높이 1.8m의 박준승 선생 유허비가 위치해 있어 박준승 선생의 굳건한 애국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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