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일보
뉴스 자치행정 오피니언 포토ㆍ동영상 스포츠ㆍ연예 사람들 보도자료
사설
모악산
데스크칼럼
기자시각
정치칼럼
전북시론
경제칼럼
프리즘
시시각각
아침의 창
세상읽기
도민광장
특별기고
독자투고
독자기고
사회칼럼
 
> 오피니언 > 모악산
모악산
박정희 평가
이상윤 논설위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1.1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google_plus 네이버밴드 msn
 1961년 5월 16일 새벽3시경 박정희 육군소장이 이끄는 쿠테타 군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한강다리를 지키고 있던 헌병들이 쿠테타 군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 차에서 내린 박정희 소장은 날아드는 총알이 두렵지도 않은지 상체도 숙이지 않은 채 움직이며 도강 작전을 폈다.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정희는 경축사를 하고 있었다. 문세광이 쏜 총알에 육영수 여사가 희생됐다. 2~3분쯤 지나 침착성을 되찾은 박정희는 "여러분 하던말을 계속하겠습니다"라며 연설문을 마지막까지 읽고 고개숙여 감사합니다는 인사까지 했다.

▼ 1979년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자신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로 부터 암살 당하고 만다. 두번에 걸쳐 죽음의 총알을 피했지만 결국 부하의 총알은 피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박정희의 몇차례 죽음의 위기를 피한 것은 그의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타고난 운명이 아닌가 싶다.

▼ 그의 어머니는 마흔네살에 박정희를 임신했다고 한다. 두명의 며느리까지 두고 있는데다 딸과 함께 임신하였으니 그 시절만해도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지못하고 다녔다. 뱃속의 아기가 원망스럽기만한 어머니는 간장을 대접으로 마시고 장독대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며 아기를 지우려했다고 한다.

▼ 그러고 보면 박정희는 뱃속에서 부터 평생 죽음과 마주하는 운명이었나 보다. 흔히 정치학에서는 박정희를 개발독재자로 평한다고 한다. 경제발전을 이유로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면서 독재자로 평가 받고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 번영의 디딤돌을 만들었던 박정희에 대한 평가의 간극이 이렇게 크기만 하다.


<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상윤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google_plus msn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베스트 클릭
1
태양광, 한 번 설치하면 되돌릴 수 없다
2
스마트팜을 전북에서 꽃 피워야 할 이유
3
군산 주점 화재, 치료 중이던 피해자 1명 사망
4
임종수·이효성, 자랑스러운 남성인상 수상
5
정읍시 제13회 정읍 구절초 꽃 축제 성공 개최 위한 발걸음 분주
신문사소개기사제보독자투고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편집 : 2018. 6. 25 22:01
전북 전주시 덕진구 벚꽃로 54(진북동 417-62)  |  대표전화 : 063)259-2170  |  팩스 : 063)251-7217  |  문의전화 : 063)259-2176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북 가 00002   |  등록일 : 1988년10월14일  |  발행인, 편집인 : 임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상기
Copyright 2011 전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omin.co.kr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