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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수탈사를 통해 현명한 의사결정을..전북도민일보 비전창조 제2기 CVO과정 <24강> 변종만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관리단장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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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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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도민일보 비전창조아카데미가 16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실시된 가운데 강사로 초빙된 변종만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 관리단장이 ‘호남평야와 일제시대의 농업 수탈’을 주제로 열정적인 강의를 펼치고 있다. 김얼 기자
 “우리 고장의 일제 강점기 수탈사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현명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전북도민일보 대회의실에서 12일 진행된 비전창조아카데미 제2기 CVO과정 24주차 강의 강사로 변종만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관리단장은 “우리나라의 강을 보면 역사를 알 수 있고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우리의 서글픈 역사가 담기기도 했지만 산업기반의 마련이 틀도 갖춰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변종만 단장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31년간 근무해오며 수자원공사 전북본부 관리처장과 수자원공사 예산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전북 향토사와 관련해 당시 상황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역사 전문가다.

 이날 강의는 ‘호남평야와 일제시대 농업수탈’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변종만 단장은 군산항 개항과 함께 일제수탈이 시작되며 한반도 역사에서 농업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이뤄졌다.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정세는 일본의 대륙침략으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기 시작했다.

 1876년 운양호사건으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되며 조선의 문호가 개방됐다.

 이때부터 일본인과 일본 단체의 대거 진출이 이뤄졌다.

 1899년 군산거류지회 설립을 시작으로 1901년 군산 일본민회 설립, 1908년에는 군산세관과 함께 1916년도에는 상업회의소가 설립됐다. 이후 1932년 군산미연취인시장에 미곡취인소가 들어섰다. 미곡취인소가 설립되고 나서 소작농들에 대한 일본인들에 의해 무차별 착취가 이뤄졌고 농민들의 반발이 일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인 농업대자본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농지수탈이 본격화됐다. 일본인 지주들이 대거 조선에 들어오며 농지를 대량으로 매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 단장은 일본의 한반도 수탈정책과 농지점령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1904년 만들어진 한일의정서에 따르면 일본이 조선의 영토를 전략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해 러-일 전쟁에 대비하고 장기적으로 조선을 침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토지매입을 위해 일본인들은 1910년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토지조사령을 내렸고 1/20수준으로 땅을 사들였다.

 토지 조사령은 식민지 수탈을 위해 한반도 전체에 걸쳐 토지조사를 실시했고 조사에서 나온 새 땅의 대부분은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일본인 거대 지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더불어 1938년 조선교육령까지 발령되며 한글이 금지됐다. 조선에 대한 일본 식민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시기였다.

 수리시설과 물류시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도 이뤄졌다. 농업뿐만 아니라 산업활동을 위한 기반도 갖춰지기 시작했다.

 1907년 군산항이 축조되고 190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포장도로인 전군가도가 개통됐다. 1917년에는 수리조합령이 내려지며 전국 14곳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강정비 사업이 이뤄졌다.

 이 사업에서는 준설과 보, 직강화 등이 진행됐다.

 1925년 농진수리조합이 탄생하고 운암제가 만들어졌다. 본격적으로 전기가 들어오게 됐고 1965년 섬진강 댐이 만들어지며 전라북도의 음수를 책임지는 젖줄이 됐다.

 강정비 사업이 이뤄지고 일본인들은 이 시기에 맞춰 대규모 농장을 만들고 쌀을 반출했다.

 전북지역에만 역세권에 자리 잡은 일본인 소유의 대규모 농장이 20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일례로 익산에는 전북농장(오산), 동척농장(이리) 등이 있었고 전주 같은 경우 미쓰비시 그룹의 창업자기도 한 이와자키가 운영한 동산촌이라는 대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1909년 기준으로 전체교역량의 95%가 쌀이었고 군산항에서 반출량은 32%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쌀을 생산해내는 조선인 소작농이 급증했다.

 1916년 53% 수준이었던 농민들이 1930년에는 무려 87%까지 증가했다.

 이때 일본인들은 소작료를 기존의 40% 수준에서 75%까지 인상했다. 이에 반발한 농민들은 들고 일어섰고 현재의 노동조합과 같은 개념이 만들어졌다.

 쌀과 함께 활발한 생산과 거래로 1926년 전북에서 군산(1926년)과 이리·전주(1935년)가 부로 승격한다.

 이 시기 조선인들의 아픔과 일본인들의 만행을 그대로 담아낸 채만식의 ‘탁류(1937년)’를 집필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금강은 눈물의 강’이라고 표현했다.

 군산을 대표하는 문인인 채만식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대의 사회상을 소설에 녹여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소설이 곧 군산의 과거이며 우리나라의 산 역사인 것이다.

 변종만 단장은 “인생을 살아가며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면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현명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면서 이날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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