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천도교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동학·천도교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 이윤영
  • 승인 2017.11.15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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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어느덧 쌀쌀한 기온에 길가의 낙엽들이 바람에 뒹군다. 들녘의 오곡들도 추수가 끝나자 텅 비워져 왠지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 떠들썩하게 한국을 다녀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인 한미자유무역협정(FTA)개정을 어떻게 재협상을 할 것인가가 큰 걱정이다. 트럼프는 무역 재협상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줄곧 김정은 위원장과 전쟁위협 발언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문재인 정부는 걱정이 앞섰는지 트럼프행정부의 노골적인 무기강매에 한미동맹국과 북미평화대화의 애매모호한 이유로 미국산 무기수입에 막대한 비용을 먼저 제안하였다 한다. 물론 세계 4대 강대국(미·중·일·러)에 둘러져있고, 남북긴장이라는 현실에 최첨단무기구입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말들도 있다. 이러한 한반도 위기상황은 지난 동학농민혁명, 남북세계전쟁과 같은 비슷한 국제상황이 도래했다고들 말한다. 나는 정말 전쟁이 아닌 평화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역사의 인물에서 리더십을 배운다

 지난 11월 9일, 우석대학교 교양학부 최정순 교수의 인솔로, 리더십 수강학생 70여 명이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에 왔다. 방문목적은 3년 전부터 1년에 두 번 학기말에 ‘동학천도교에서 리더십을 배우다’란 주제로 전시관 관람과 특강을 원해서이다. 요즘 기념관은 일반관람객은 물론 현장학습과 수학여행 등에 의한 초·중·고·대학생들의 단체 방문이 전국에서 줄을 잇고 있다. 예를 들어 저번에도 조광환 선생이 인솔한 정읍 학산중학교 여학생 152명이 전시관 관람과 필자에게 동학의 사상과 역사를 배웠다.

 우석대학교처럼 관람은 물론 특강을 원할 경우 2층 천도교전주교구 동학교육관에서 약1~2시간의 단체강의를 해주고 있다. 우석대의 특강 목적은 ‘리더십’에 있기 때문에 동학의 역사 인물을 주인공으로 리더십 교육을 했다. 리더십 교육의 인물은 최제우·최시형·손병희·박인호 선생, 전봉준·김개남·손화중·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한 분을 더 추가하면 방정환 선생까지 포함된다. 위에서 거론한 분들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1백년 리더한 성인(聖人)이자 위인(偉人)들이다.

 

 평화주의와 혁명주의의 리더십

 이번 우석대 리더십 교육은 동학지도자 두 분의 예를 들어 강의하였다. 해월 최시형 선생과 녹두 전봉준 장군의 사상과 역사는 물론 인생관이다. 해월선생과 녹두장군은 사제지간으로서 동학농민혁명 당시 서로 다른 노선의 길을 택하였다. 해월선생은 철저한 평화주의자이다. 녹두장군은 완고한 혁명주의자이다. 물론 동학의 인내천, 사인여천, 보국안민, 척양척왜 등의 동학사상 실천에서는 한길을 갔다. 그러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에서는, 해월선생은 평화집회만을 허락하였고, 녹두장군은 혁명봉기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래서 혁명의 제1차봉기 즉 반봉건 기포 때에는 녹두장군의 영향력이 강한 호남 즉 남접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해월선생은 동학교단의 전체책임자는 물론 미래까지 염려해야 하기에 무력봉기를 반대하였다.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시기론 즉 아직 힘을 더 길러야 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녹두장군은 지금이 때이고 동학의 세력도 최고조로 보았다. 동학혁명1차기포의 최대 성과는 민관상화에 의한 집강소를 설치하여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민주자치시대를 열은 것이다.

 이후 일본군과 청군이 조선에 들어와 청일전쟁을 일으켜 일본군이 승리하자 일본은 조선관군을 해체 즉시 다시 일본군 지휘를 받는 조일연합군을 편성하였다. 그 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목적으로 본격 동학당 초멸작전에 들어갔다. 이때 동학혁명군의 제2차봉기 즉 반외세 기포에는 해월선생에 의해 북접은 물론 전국에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손병희 대접주에게 동학군 통령에 임명하여 전봉준 장군과의 연합전선을 지시하였다. 이는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짓밟히지 않으려는 결단이었다. 결국 동학농민혁명은 일본군에게 무참히 진압되고 학살되어 약 30만 명이라는 희생자를 냈다. 이후 동학혁명 정신은 일제강점기에 3·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계승되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해월선생의 생명평화노선과 녹두장군의 위국혁명정신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리더십으로서 위대한 역사를 남겼다.

 이윤영<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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