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관습헌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의 헤게모니라는 것이 감히 헌법이라는 지위를 얻을 만큼 막강하다는 것도 개탄스러운 일이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식의 ‘관습’ 적 헤게모니가 비단 서울과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엔 서울만 있느냐는 탄식은, 호남에는 광주만 있는가, 전북에는 전주만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층위만 달리한 채 그대로 전이된다. 국책사업을 하든지 시범사업을 하든지 일단은 서울과 수도권이 몇 개를 선점하고 난 후 남은 몫을 지방으로 하나씩 안배해 주는 것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지방 몫을 차지하는 곳은 으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들이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면 호남의 수도는 광주, 경남의 수도는 부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조차 ‘수도’를 벗어나 주변부 신세를 면치 못하는 지역들은 늘 이중차별의 벽이 서럽고 한스럽다. 필자가 예결위 간사를 하며 익산에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려고 했을 때 “호남에 익산도 있었느냐?”는 부처 관계 공무원의 호기로운 질문이 더 아프게 들린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다시 예산시즌이 돌아왔다. 도에서 제출한 주요사업 목록을 받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다. 아직 예산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전주시에 배정된 사업은 가짓수만 치더라도 다른 지자체들 평균치의 두 배가 넘었다. 전주에 배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사업내용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왜 전주인가’가 아니라 ‘왜 전주가 아니면 안 되는가’이다.
돌아오는 답변은 늘 한결같다. 인구가 가장 많으니 사업 타당성이나 수익성이 좋게 나온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반복해온 이 논리 덕분에 전북 면적의 2% 남짓에 불과한 전주에 전북 인구의 3분의 1이 거주하고 있다. 지방의 인구 자체가 적어서 심각성을 못 느낄 뿐이지 비율로만 본다면, 전국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 집중보다 훨씬 더 심각한 편중이다.
그러나 인구가 많아서 예산을 준다는 것은, 체급이 크니 메달을 준다는 식의 다분히 행정편의주의적이고 몰가치적인 정책결정기준이다. 비용편익분석만으로 정책결정을 한다면 알파고한테 맡기면 되지 굳이 왜 선거를 통해 민의를 수렴하겠는가. 지방의 도민들도 대통령을 뽑았고, 전주에 살지 않는 도민들도 도지사를 뽑았다. 전기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동네 주민들도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서울 강남에 사는 주민들과 똑같은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새 정부가 약속한 개헌의 주요쟁점 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헌법규정에 구현해내려면 단합된 지방의 힘이 절실하다. 지방의 목소리가 단결되지 못한다면 선언적인 원칙을 확인하는 데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서울의 수도권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기에 앞서 전북의 자화상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순서다. 서울도 전주도 아닌 주변부에서 소외되어 온 주민들은 서울 중심의 대한민국을 비판하기에 앞서 전주 중심의 전북은 과연 뭐가 다른가를 먼저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중차별의 한을 뼈아프게 겪어 온 전북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전북이 먼저 선구적 모범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촉구한다. 관습헌법의 틀은 어떻게 깨는 것인지, 비용편익비율보다 더 중요한 예산배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북에는 전주 외에도 기회만 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지역들이 얼마나 많은지, 전북이 먼저 보여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강력한 지방분권의 당위성은 없을 것이다. 전북형 지방분권이 선진적 모델로 소개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춘석<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