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와 숙의 민주주의?
투표와 숙의 민주주의?
  • 강주용
  • 승인 2017.11.0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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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혁신동의 행정구 배치를 위한 해당지역 주민 투표가 지난달 17일 실시했다.

 전체 유권자 1만1천776명의 43.7%인 5천146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에 참여한 주민 57.1%가 덕진구를 편입행정구로 택했다.

 외관상으로 투표참여율도 좋아 모양새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주민들의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장기적인 전주시 발전방안보다는 해당 지역 정치세력과 이익단체들의 유불리(有不利)에 좌우된 경향이 크다.

 전주시 행정구역 개편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6차례 이뤄졌다.

 주민투표까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용역에서 완산구보다 인구가 적은 덕진구를 혁신동으로 편제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전주시는 결론과 다르게 혁신동을 완산구로 배치하겠다는 견해를 내놓아 지역민들에게 혼란을 부추겼다.

 시민의 발이 되어야 하는 의원들조차도 정치적인 유불리(有不利)로 행정구 배치를 주장했다.

 단순히 찬·반을 묻는 투표의 정당성이 있는 것인가?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화 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떠올랐다.

 지난 10월 20일 공론화위는 5·6호기의 원전 건설을 영구중단에 대해 발표를 했다.

 공론화위는 7월 24일 출범해 지난달 13일부터 5일간(2박 3일 합숙) 토론한 후 20일 결론을 도출했다.

 왜 혁신동 주민투표의 결과에 신고리 5·6호기 영구 중단 공론이 떠오르는가?

 이제 시민들은 결과만을 위한 과정은 중요시 않는다.

 단순한 찬·반의 의견만을 강요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단순한 찬·반은 주요 갈등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잇단 분쟁을 낳고, 장기적인 발전방안을 만들지 못한다. 일시 방편적인 해결책은 나중에 더 큰 분쟁을 낳는다.

공론화위는 우리나라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처음 시도했다. 숙의민주주의란 정치나 정책의 현안들을 시민들 사이의 공정하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지난 2014년도부터 시작된 혁신동 편입의 문제는 입김이 센 이익단체나 정치단체에 휘둘렸다.

 외관상으로는 혁신동을 덕진구로 편입하는 투표결과에 수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면적으로 보면 시민들의 숙의 있는 판단은 아니다.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혁신동의 행정구 배치에 대한 절차를 차분히 준비하였다면 공론 과정에서 발전적이고 바람직한 행정구역 개편 모델이 나왔을 것이다. 시민 참여 자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결정을 위한 공론화위는 진지한 학습과 많은 토론 기회, 충분한 숙의 기간을 거치면 ‘민의’(民意)를 만들어 냈다.

정구의 규모에 따라 행정관청의 예산·력 등의 차이가 있다. 효율적인 행정관청의 운영과 장기적인 전주시 발전방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현재 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절차로 행정구 개편을 마무리해버렸다.

 풀뿌리 시민 자치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느 구에 편입되는 것이 전주시 발전에 중요한 것인가의 자료를 준비·제공하고 전주시민의 의견을 모으고 숙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앞으로 일어날 행정구의 편차를 줄일 수 있다.

 모든 것을 신고리 5·6호기 원전의 공론화처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일시적 판단과 이익단체에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론화위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해야 한다. 해당 주민과 이권이 없는 제3의 전주시민의 의견을 모으고 숙의하였다면 더 나은 전주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주용 도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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