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 “최소한의 협력과 인도적 지원 필요”
김덕룡 “최소한의 협력과 인도적 지원 필요”
  • 청와대=소인섭 기자
  • 승인 2017.10.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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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자문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 위원 초청 간담회에서 김덕룡(76·익산 오산) 수석부의장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이끄셨다. 최적임자다”고 평했다.

20대에 시작한 김 수석부의장의 민주화 운동은 70에 이르러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운동으로 전개됐다. 그가 “현대사 굴곡을 겪으면서 어떤 결정을 고민할 때는 이익보다 어떤 게 옳은 길이냐를 판단기준으로 삼았다”고 한 것에 분명 동력이 있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신념에 찼던 그는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신장, 국가혁신, 한반도 평화에 천착해 왔다. 그런 그가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을 논의하고 이를 위한 국민 합의를 모으는 선봉에 섰다(문 대통령 당부의 말).

임명장을 받던 날 대통령에게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한 통일 원칙을 만들기 위해 ‘통일 국민 대장전’ 같은 선언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31일 평통 전체회의 준비에 바쁜 김 수석부의장을 만난 곳은 남산을 지척에 둔, 옛 안기부 분실이었던 민주평통 사무실에서다.

 -부의장직을 처음엔 고사했다.

 ▲평통은 과거 군사정권의 산물이다.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해온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의원시절부터 평통이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면서 위상과 역할의 변화를 주장해왔다. 또 대선 기간에는 문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에 공직을 맡으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제 견해와 차이가 없고 개헌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이 대응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전해주셔서 수용했다.
 

 -임명장을 받을 때 대통령이 당부한 말씀은.

 ▲남북관계 대전환을 잘 준비해 달라고 했다. 남북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데 앞장서겠다고 말씀 드렸다.
 

 -긴 의원생활과 민화협, 세계 한상 활동이 통일 정책에 어떤 도움이 되나.

 ▲젊음을 민주화 운동에 바쳤고 제도권 정치에 들어와서는 지역과 이념의 갈등을 뛰어넘어 국민통합을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여와 야를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민화협 상임의장 시절에는 해외지부를 처음 창설했는데 남북 정부 간 교류·협력이 어려워졌을 때 재외동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나무심기 운동을 전개할 때는 해외동포의 참여를 이뤄냈다.
 

 -활동 목표를 들려 달라.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매우 어려웠다. 북한의 도발과 핵개발 등이 원인이 됐지만 지난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과 진전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일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북한 정권이 곧 망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측면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어려운 상황이 올지라도 인내하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평화로운 한반도와 번영의 길로 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평통은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하면서 정부의 노력을 적극 뒷받침할 것이다. 개헌과정에서 평통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할 것이다. 통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조직이 되도록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평통의 위상과 활동방향을 정리해 내놓겠다.
 

 -취임사에서 평화의 주춧돌을 놓는 중심에 평통이 서야 한다고 했다.

 ▲비정상적 남북관계 상황을 빨리 바꿔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높이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긴 안목으로 보면 핵문제와 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협력과 인도적 지원 사업은 필요하다. 해외지역에서 북한과 인도적·문화적 교류를 늘려가고 남북 사이에도 DMZ 걷기나 음악회 등을 통해 평화를 증진하도록 검토하겠다.
 

 -통일정책의 세대 간, 진영 간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있나.

 ▲국민합의가 없는 대북정책은 지속될 수 없고 정책의 추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고 정권의 변화에도 지속가능한, 일관성 있는 통일 대장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문 대통령이 통일 국민협약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름을 어떻게 하든 이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추진할 것이다.

 또한 젊은 세대들은 두 개의 국가로 사이좋게 살아도 좋다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매우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더 도약하고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통일은 필수다.
 

 -핵과 미사일 도발과 한반도 상황은.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한 후에 미국과 직접대화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국으로서 대화의 장에 나오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핵무기가 자기 체제를 지켜줄 것이라는 망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핵무기에 집착할수록 강화되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때문에 북한 체제는 결국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한반도 상황은 위기국면이다. 엄동설한이 지나 봄이 오듯, 북핵 해결을 위한 진통을 겪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회담)당시는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DJ의 6.15선언에 대해 야당의원으로서 처음 지지 선언을 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민화협의 참여를 반대했다. 노태우 정부 때의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6.15와 10.4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에 매우 중요한 성과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담보하고 국내외의 변화된 요소를 반영해 남북이 통일을 향해 손잡고 나가는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재외동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재외동포의 보호 및 권익 실현을 위한 제도는 대부분 의원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이뤄낸 사안들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4강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다행히 우리 재외동포들이 4강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협의회 출범이 이뤄지고 있고 중앙회 출범식도 준비 중이다.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자문하고 통일과 남북관계의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적절한 제도를 연구하고 있다. 선진화된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목표이므로 통일문제에 관한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내고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통이 어떤 조직으로 만들어져야 그 역할을 가장 효과 있게 할 것인가를 연구중이란 것이다. 이번 개헌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말이다. 
 

 -국회의원 5선을 했다. 국회에 당부하고픈 말이 있나.

 ▲선배로서 책임 있는 사람이 비판적 이야기를 하는 게 송구하다. (그렇지만)너무 작아 보인다. 큰 틀에서 하면 좋겠다. 국회의원이 입법전문가인 기능인 적 역할만 하고 있는데, 지사적 느낌과 안목으로 나라를 봐야한다. 지나치게 정파나 이념, 지역에 매몰되지 않고 큰 틀의 정치를 하면 좋겠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중퇴했는데.

 ▲1964년 6월 3일 박정희 군사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대학생 1만 명이 시위를 했는데 당시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총학생회장 겸임)이었다. 이미 3월부터 반대투쟁을 했고 5월 말에는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가 중심이 돼 단식농성을 했다. 6.3항쟁의 도화선이 됐는데 계엄령이 선포됐다. 6.3동지회 초대 회장을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돼 제적됐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이 돼 민주화 운동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하게 됐다.
 

 -YS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청년운동을 하던 당시 YS가 직접 익산 출마를 권유했지만 정치인으로서 준비도 안돼 있어서 비서관마저 거절했다. 이후 YS가 대선 경선서 떨어진 뒤에야 비서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70년 말의 일이다.

 -전두환 씨와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모이지 못하게 하고 사무실도 갖지 못하게 해서 민주산악회를 만들었다. 전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산악회는 나로서는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데 당신 때문에 (산악회를 만들어) 산에 다녔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여전히 정정하다. 산행을 시늉으로 하지 않는 모양이다.

 ▲80년대부터 산을 다녔다. 개인 산악회가 2개 있다. 건강을 지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쉬는 날은 무조건 등산을 한다. 매월 첫째 토요일은 멀리, 1년에 한 번은 지리산 종주, 또 1년에 한 번은 세계 준봉을 오른다. 북알프스를 비롯해 안나푸르나, 중국의 설산, 후지산 등 3천m 이상의 산을 오르곤 한다.
 

 -고향 익산은 자주 방문하나.

 ▲이리시와 익산군 통합을 추진할 때 익산이란 이름을 살려 통합을 하도록 힘썼다. 솜리는 일제가 속명을 한자로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1년에 한두 번 간다. 선산이 완주 운주에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1천㎡도 되지 않는 논은 아들에게 물려 줄 생각이다. 전북 농민의 자손이란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서다.
 

 ◆김 수석부의장 프로필

 김영삼 신민당총재 비서와 비서실장을 거쳐, 제13~17대 국회의원, 정무 제1장관, 제17대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대통령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을 역임.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시민이 만드는 헌법 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이사장,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행동 상임공동대표,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호남 출신이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좌장’이자 개혁적 보수 성향의 원로 정치인으로 지냈다. DMZ평화상 대상과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최고대상을 수상했다.

 청와대=소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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