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대신 달콤한 차
술 대신 달콤한 차
  • 이창숙
  • 승인 2017.10.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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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6>
햄프턴 코트 궁전의 한 방에 전시된 설탕과자
 17세기 이후 유럽은 포도주와 맥주가 누리던 절대적 우위를 차츰 커피와 차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커피는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영국 등지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조금은 과장 된 듯하지만 1700년경 런던에는 커피하우스가 무려 3천 곳이 넘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영국인들은 커피보다는 차를 즐기게 되지만, 초기에 커피는 각성작용으로 인해 이성적인 문화, 명석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대화가 오가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새로운 사조에 대한 열망과 참여를 불러왔다. 제임스 하우얼(James Howell, 1594경~1666)은 “예전에 장인들과 점원들은 아침부터 포도주와 맥주를 마셔 머리가 무거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사람을 각성시키는 이 부르주아 음료에 익숙해져 있다”라며 당시 커피가 부르주아 윤리의 동맹자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커피는 엘리트 음료로 시작하여 18세기 말부터는 일반 대중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파리에서 커피가 포도주를 대신하면서 대중의 기호음료가 되었다. 당시 중산층에서 노동자들 까지 하루 종일 커피를 마셨는데, 중산층의 집에는 항상 커피가 준비되어있어 손님을 대접하였다. 노동자들에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맛으로 보면 커피와 차는 쓴맛을 지닌 음료이다. 이미 익숙해있는 유럽인의 음주문화를 커피와 차 문화로 바꾼 것은 달콤한 맛을 지닌 설탕이 한몫을 했다.

  인간은 쓴맛에 대한 본능적인 미감을 가지고 있어 빠르게 익숙해진다고 한다. 식품마다 서로 다른 구체적인 쓴맛을 내지만 이 맛에는 관용적이다. 하지만 단맛은 일정한 단맛만을 내기 때문에 쓴 식품에 설탕을 첨가하면 설탕과 비슷한 단맛을 내게 된다. 유입된 초기부터는 아니지만 쓴맛을 없애기 위해 유럽인들은 커피와 차에 설탕을 넣어 마셨다. 쓴맛을 내며 칼로리가 없는 각성음료에 칼로리가 높은 단맛을 내는 설탕을 넣어 뜨겁게 마셨다. 결국 차는 맥주의 자리를 대신하였으며 매력적인 포도주와 다른 독한 술도 밀어내며 상류층의 기호음료가 되었다. 뜨겁고 달콤한 칼로리가 높은 차는 영국인의 날씨와 식단에도 잘 어울려 인기를 더해갔다. 챔벌린은 1685년 그의 논문에서 커피와 차, 초콜릿에 설탕을 첨가해 마셨음을 말하고 있다. 당시 이것들은 매 파운드 당 단가로 계산할 때 초콜릿이 가장 비쌌다. 때문에 부자들은 초콜릿에 더 호감을 가졌다고한다. 차의 가격이 가장 저렴하였는데 가격 때문에 차를 많이 마신 것은 아니며 가격보다도 맛과 관련된 것으로 차에 설탕을 첨가했을 때 맛의 변화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차와 설탕은 서로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게 되었고 영국은 커피를 마시는 민족에서 차를 마시는 민족으로 변해갔다. 영국에서 차의 성공은 곧 설탕의 성공이었다. 차 소비의 증가는 설탕 소비의 증가를 가져왔다. 인도에서의 차생산은 엄청난 수입을 가져다주는 수입원이 되었다. 방대한 식민지에서 대규모 차 산업을 일으켰으며 단순한 이익을 얻는 것만이 아닌 통치의 수단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차가 생산되고 빠른 속도로 성공하자 차 가격이 너무나 떨어져 당시 가장 천한 계급인 노동자도 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달콤한 뜨거운 차에 빵을 적셔먹는 것은 그들의 훌륭한 식사였다. 그들이 마시는 차는 싸구려 찻잎에 색깔이 우러나고 거기에 갈색설탕으로 단맛을 낸 물 정도였지만 그들에게는 매력적인 맛이었다.

  18세기 사회개혁자 조나스 한웨이(Jonas Hanway, 1712~1786)는 가난한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것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노동자들이 주인 흉내를 내는 것은 나라가 망할 징조이다. 평민들은 고국에서 나는 온전한 식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주 먼 곳에서 난 사악한 맛을 즐기는 것은 한 나라의 어리석음이 극에 달한 것이다. 어떤 골목에 가면 거지들이 차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석탄재를 싣고 가면서도 차를 마신다. 심지어 건초를 만드는 사람들조차도 차를 마신다. 불행한 것은 차를 몰아낼 힘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차를 마시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으나 차는 영국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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