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과 대학교육
청년실업과 대학교육
  • 김동원
  • 승인 2017.10.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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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률 50% 이하, 그 중 절반만 정규직. 최근 수년간의 취업시장 상황판이다. 청년 실업자 100만명 시대. 금년도 전국 청년층 취업률은 42%, 전북의 청년층 취업률은 34%. 정부나 사회의 일자리대책은 차고 넘치는데 주변에서 취업에 성공한 이야기는 들은 지 오래다. 일자리가 없으면 스스로 창업을 하라는 데, 매년 창업한 기업의 90%가 1~2년 후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누구도 쉽게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캠퍼스에 나타난 학생들의 모습은 늦은 비 내리는 회색빛 오후의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풀기가 없다.

 이미 알거니와 취업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소문난지 오래다. 소위 유명대학이나 유망 전공이 아니면 그 경사는 더욱 가파르다. 물려받은 것이 없는 흙수저는 이미 그 운동장의 밑변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이 운동장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이다. 좁은 미로 끝에는 수천, 수만의 절박함이 빼곡하다. 간간이 들려오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사발문 따위로는 미로 출구 찾기가 난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과 불안감만 가중된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면 바뀌려나 모두가 기대했지만, 이 시장은 전혀 다른 공간이다. 화려했던 왕년의 제조업은 만리장성에 무너지고 정규직 없는 서비스 자동화의 시대가 밀물처럼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촛불인 아닌 횃불로 학생들의 진짜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타오르는 횃불과 아우성이 거리를, 광장을 가득 채울지도 모른다. 거리의 청춘은 무엇보다 일하고 싶다. 젊음을 바칠 무대를 찾고 싶다. 노동 착취라도 좋으니 안정되게 일만 하게 해달라고 거친 비명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 오늘날 대학 교육의 현장은 어떠한가?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강의 방식과 암기위주의 교실이 여전하다. 학생들의 기초는 부족하다는데, 현장에서는 무엇을 할 줄도 모른다는데, 교수들은 잘 가르치기보다 여전히 논문과 승진에 매달린다. 그들의 손익계산서인 업적평가는 누가 잘하는지 논문 편수 채우기에 바쁘다. 들여다보면 그들도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매일 힘들게 살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대체한지 오래다. 커다란 전광판과 홍보 메일이 신경안정제처럼 교수와 학생들의 눈에 회색 안경을 씌우고 잠재우는 동안, 대학사회는 경쟁력이라는 허울 아래, 혈관에는 오래된 녹이 쌓이고, 관절은 거칠게 닳아 삐걱거린다. 자기 체면에 취한 정치와 언론은 방향타를 놓은 지 오래고, 허공에는 서로에 대한 손가락질만 오뉴월 날파리처럼 가득하다.

 소리없는 군대처럼 우리를 포위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도 우리에게 별다른 답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자동화의 가속화 등으로 일자리는 조만간 더 줄어들 것이라는 고지서로 다가올 뿐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이야기 한 <노동의 종말>이 격한 현실로 다가온다. 그의 예견대로 저급 노동자, 중급 지식 근로자의 설 자리가 급속히 사라질 것 같다. 그럼에도, 에서 린다 그래튼은 은퇴 혹은 정년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앞으로 사람들은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5년 내에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지고, 현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65%는 현재 세상에 없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고한다. 결국 일자리는 사라지는데 수명은 늘어서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따라서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일거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대학은 존재가치가 무의미해진다. 캠퍼스 없이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수행하는 미네르바 대학의 교육모델은 단기 직업교육을 통해 신기술을 학습하게 하는 마이크로칼리지, 지구촌의 명강의를 모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MOOC 등과 더불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대학의 미래가 될 것이다. 어느덧 교문을 나선 졸업생들이 빨간 점멸등 아래 교차로에 몰려든다. 교차로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한 청년들은 절망으로 속이 탄다. 청년의 절망은 우리 사회의 절망이다. 대학 사회가 깊은 성찰과 고뇌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이유이다. 대학의 가장 큰 대주주는 학생이고 국민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 오래된 칡넝쿨로 둘러싸인 관습의 울타리에 숨통을 만들어 줄 것인가? 이벤트와 슬로건으로 얼룩진 대학의 전광판에서 새로운 물꼬를 찾아낼 희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가?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한 화가 세잔은 당시에 대세를 이루던 인상주의 화가들과 다른 길을 추구했다. 빛과 그림자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적인 색과 형태에 집착했다.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단단한 색채와 말랑말랑한 색채를 마침내 찾아내었다. 그것의 결정판이 소위 정물화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영학자이며 미래학자인 피터드러커는 생전에 인간에 대한 뛰어난 성찰력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에세이를 많이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간 그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한국을 구시대적인 교육 체계와 교육 방식에 머무른 국가로 규정한 바 있다. 공학은 시대적 요청을 기반으로 국가와 산업의 미래를 견인할 지식노동자를 양성하는 분야이다. 미래의 지식노동자를 효과적으로 양성해 내지 못하는 나라는 필연적으로 차세대에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김동원<전북대 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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