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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장인이 없다
장상록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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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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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고시원에 있을 때이다. 후배가 공부하는 고시원에 방문한 내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주인이 선배가 고시원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선배를 비난했어요. 선배가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바둑만 두고 앉아있었다며… 내가 듣다가 뭐라고 좀 해줬어요.”

  난 면전에서 그 고시원 주인을 봤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난 바둑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오목도. 그가 봤다는 바둑 두는 내 모습은 다중우주 어느 곳에선가 존재하는 또 다른 내 모습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날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 나에 대한 타인의 수많은 얘기와 평가라는 것이 그다지 진실에 가깝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내게도 유효하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고시원 여주인의 그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누군가 두지도 않은 바둑을 뒀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그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려 말 학자인 이곡(李穀)의 시문집 [가정집(稼亭集)]에 ‘의심을 푸는 방법에 대하여’라는 꼭지가 있다. 그는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아무 근거도 없이 자기를 의심한다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때도 있다. 왜냐하면 변명에 급급하다 보면 그 의심이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한 데에 반해서, 가만히 놔두면 뒤에 가서 저절로 의혹이 해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곡은 여기에서 다양한 예를 소개하고 있다. 유모인 여종이 임신을 했다. 그와 관련해 여종의 거짓말로 인한 해프닝과 그 상대방으로 지목된 홍언박(洪彦博)의 의연한 대처, 한나라 시대 명신인 직불의(直不疑)가 절도혐의를 받고 대처한 일, 증자(曾子)를 같은 고향출신의 동명이인인 살인범으로 오인해 벌어진 얘기 등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후한시대 재상인 제오륜(第五倫)의 일화다. 누군가 그를 비난하며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예전에 장인을 폭행한 적이 있지 않소.” 제오륜은 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세 번 장가들었지만 당시에 모두 장인이 없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장인에 대한 폭행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 한 번 없이 사는 사람 얼마나 되겠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곡이 예로 든 그 모든 경우를 살아가면서 겪게 될지 모른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그 이상의 억울함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남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나 제오륜이 될 수 있다. 인륜을 저버린 흉악한 범죄자로 세상에 알려진 여성이 있었다. 후일 밝혀진 것은 그녀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공권력과 언론 그리고 대중까지 그녀에게 돌을 던졌다. 이것은 이곡이 살던 고려시대 얘기가 아니다.

  원 황제에게 건의해 고려에서의 처녀 징발을 중단시키기도 한 이곡은 그의 학문과 경륜만큼이나 인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강했다. 그가 후세에 남긴 고언은 지금 우리에게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한번 들으면 의심하기 쉽고 일단 의심하면 변명하기 어렵고 변명하면 할수록 법문(法文)에 걸리기 일쑤인 경우가 있는데, 이를테면 절도의 혐의를 받는 것과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법률을 만들 때에도 이에 대한 조항을 더욱 엄격히 해서, 귀로 듣고 마음속으로 의심이 가기만 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심문하지 말라고 금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것까지 법령으로 금할 수는 없는 것이고 보면, 그런 의심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변명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내가 고시원 주인에게 ‘나는 바둑을 두지 않는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 점에서 제오륜의 억울함은 덜하다. 이렇게 말하면 될 테니 “나에겐 장인이 없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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