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마음을 치유하다’
‘시가 마음을 치유하다’
  • 김영관
  • 승인 2017.10.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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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한 인성교육 사례 ③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열림원, 2003)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의 전문이다. 시인은 비단 인간만이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꽃이나 풀잎과 같은, 어쩌면 상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것조차 상처를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 ‘꽃잎’과 ‘풀잎’은 연약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림자’와 유사하다. 우리가 드러내기 꺼려하는 것들, 무의식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의식화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이 시는 ‘저 작은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들판에 핀 꽃잎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상처 많은 꽃잎들이 상처를 이기고 꽃을 피울 때 그 꽃이 가장 향기롭고, 결국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삶이 아무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의 마지막 두 행,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라는 결론은 상처 받은 대상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 시에서는 ‘상처’라는 단어를 직접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직면하고 의식화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융(Jung)이 여러 곳에서 말했듯이 “그림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내담자)은 자신의 상황을 더 이상 문제로 보지 않고 내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바로 보게 되고, 더 나아가 내면의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게 된다.

  이 시에서 상처 많은 풀잎들은 화자일 수도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화자는 상처 많은 꽃잎이 ‘가장 향기롭다’고 말한다. 상처가 많아 꽃의 가치가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처가 많아 가장 향기롭다고 말한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해서 흉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향기로워지는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를 감상하고 나서 “내 안의 상처가 있나요?”란 질문에 학생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머뭇거림)아....니....요.....”(사례1)

 “많지요.. 이제는 상처라는 생각도 안 들어요.”(사례2)

 “상처라기보다는 고민 정도?, 상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는 있죠....”(사례3)

 “모든 사람은 상처가 있어요,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사례4)

 “있지만 뭐라 말하기가 힘드네요....”(사례5)

 “................................^^ (말하지 않고 웃음)”(사례6)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면에 ‘상처’라고 볼 수 있는 마음의 불균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뭇거리며 ‘아니요’라고 말한 학생이나 대답 없이 웃기만 한 학생 역시 상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기가 낯설어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학생들은 어느 누구나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

김영관 우림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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