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69주년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여순사건 69주년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7.10.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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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70주년을 앞두고 출간

 내년으로 70주년을 맞는 여순사건을 파헤친 역사적 통찰의 산물인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여순사건으로 학위를 받은 주철희 박사가 펴낸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1948, 여순항쟁의 역사(흐름출판사·1만8,000원)’이 그 것. 오는 19일 여순사건 69주년을 앞두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이미 한 차례 여순사건에 대한 책을 선보인 바 있는 저자는 4년 만에 다른 이야기로 돌아오면서, 여순사건을 ‘여순항쟁’이라고 부르기를 선언한다.

 어떤 이는 반란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이는 항쟁이라고 부르는 등 이중 잣대 속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있는 사건의 정체를 찾기 위해 공을 들인 저자의 노력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많은 사료에 밑줄을 치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 숱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이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사실, 여순항쟁은 아직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 접한 한 구절 정도의 기억을 소환해낸다면 ‘여수순천사건’정도가 생각날 것이고, 여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군란 등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1955년 4월 1일까지 이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대락 1만5,000~2만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재산 피해는 약 100억 원, 가옥 소실은 2천호 가량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정부가 발간한 자료를 비롯한 역사책에는 여수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제14연대가 제주도 출병을 반대해 일으킨 반란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 누구도 섣불리 진실을 얘기하기 어려웠다.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이 사건은 오랜기간 지속되면서 여수,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을 비롯한 37개 시·군의 광범위한 지역이 죽음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해나갔고, 독재정권은 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면서 “그리고 이 사건은 반공국가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인한 정국혼란이 있을 때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자기검열을 요구하는 주홍글씨로 남게됐다”고 설명했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역사의 기록 앞에 많은 단어에 권력 이데올로기가 깊이 투영되기 때문에 그 명칭부터 바로 잡아 부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용어의 선택으로 인해 역사적 성격은 물론 대중의 역사 인식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14연대 군인은 국민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던 올바른 군인이었다. 민중은 그에 호응하여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돌변한 관료와 경찰의 부정부패, 부조리에 저항으로 맞섰다”며 “여순항쟁은 결코 부끄러워할 역사가 아니다. 제 나라 국민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벼이 여겼던 이들의 명령을 거부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순항쟁을 법적, 제도적으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여순항쟁 전문 연구기관의 필요성과 지방정부의 적극적 참여, 행정적 지원시스템의 마련, 지역사회와의 연대활동을 남은 과제로 언급했다.

 여수 출신으로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순항쟁을 비롯해 국가폭력과 반공문화에 대해 집중 연구하고 있으며, 지역의 근현대사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 ‘불량 국민들’,‘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가 있으며, 공저로 ‘주암호의 기억’, ‘인물로 본 전라도 역사이야기’등이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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