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일보
뉴스 자치행정 오피니언 포토ㆍ동영상 스포츠ㆍ연예 사람들 보도자료
편집 : 2017. 11. 24 14:48
사설
모악산
데스크칼럼
기자시각
정치칼럼
전북시론
경제칼럼
프리즘
시시각각
아침의 창
세상읽기
도민광장
특별기고
독자투고
독자기고
 
> 오피니언 > 도민광장
도민광장
불교적 효의 근본사상에 대한 고찰
김종하 국민행동본부 자문위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0.1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google_plus 네이버밴드 msn
인간은 부모(父母)로 인하여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恩惠)를 알고 보답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원초적(原初的)이며 정신적인 기초를 다져가는 것이며 또한 인간다운 품성(品性)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이 부모에 대한 효(孝)를 잊을 때 인간으로서의 품성은 상실되고 인간사회의 조화 있는 성장은커녕 침체되고 급기야는 붕괴(崩壞)될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효에 대한 말씀이 간곡(懇曲)하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일체의 선행과 일체 공덕의 근본이 효라고 하셨다.

  그러기에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효의 공덕은 부처님께서 한 겁(怯) 동안 계속해서 설하시더라도 다 말씀하시지 못한다” 하셨고, 부처님께 공양(供養)함과 부모님께 효도(孝道)한 공덕은 똑 같다고 말씀하셨으며, “부처님이 모든 것을 성취한 것도 다생겁(多生怯) 동안 효도한 인연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효’ 한 자가 인간적 행위의 표징(表徵)이며 만 가지 선행의 첫째이고 인간성이 넘치는 도의사회를 건설하고 한 민족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요추(要樞)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실천해야 하겠다.

  유교(儒敎)에서도 삼강오륜(三綱五倫)과 효경(孝經) 등 ‘효’에 대한 내용이 없는바 아니나 불교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부모의 은덕을 깨닫게 하고 부모에 대한 효 사상을 잘 나태내고 있다. 이는 ‘대보부모은중경’(大報父母恩重經)에서 엿볼 수 있다.

  유교적 의미에 있어서 효는 부자관계이다. (여기에 모도 포함한다.) 따라서 부는 자(慈)해야 하며 자는 효(孝)해야 한다. 이때 부의 자나 자의 효는 떨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생 본연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차마 어쩔 수 없는 마음’에 의하여 나타나는 정감이다. 그것이 곧 인(仁)으로 성(性)이요 정(情)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측은지심은 외물의 촉감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가에서는 이러한 ‘측은지심’을 도심(道心)이라 하여 도심을 확충시키라고 하였다.

  효라 해서 한 가정의 효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효를 전제로 교화(敎化)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유가의 측은지심이란 불교의 자비에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비의 구현은 보살(菩薩)이라 한다면 불가(佛家)의 효는 유가(儒家)의 효보다 더욱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자비의 구현은 보살이라 한다면, 불가의 효는 유가의 효보다 더욱 적극적이라고 본다. 유가는 인(仁)의 실현을 먼저 가정을 통하여 사회, 국가로 점차적으로 확충 교화해 간다면 자비인 보살행(菩薩行)은 친소원근(親疎遠近)을 막론하고 포괄적(包括的)으로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실현하려는 데서 그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자비란 편애(偏愛)와는 다르다. 자비인 인간 본성의 발로는 대중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불교의 자비란 곧 평등심(平等心)의 구현이요 요익중생(饒益衆生)인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질과 양으로 아픔을 함께 하고 즐거움을 함께하는 그러한 덕(德)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부모를 버리고 다른 부모를 먼저 건지는 ‘양주(楊朱)의 위아주의(爲我主義)’ 그러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자(慈)란 ‘자애롭기 한이 없는 마음’이요, 비(悲)란 ‘고난을 같이 나누는 마음’이다. 이러한 자비는 부모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골고루 같이 하는 마음’으로 전달된다. 이기적(利己的) 개아(個我)로부터 보편적 자아(自我)로의 승화이다. 이것이 곧 이타정신(利他精神)이다.

  불교는 이미 보살의 자비정신에서 그 효의 개념이 뚜렷이 드려난다.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이미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리이면서도 이타하고, 이타이면서도 자리인 것’이다. 이것이 곧 자비(慈悲)인 것이다.

  여기에 불교적(佛敎的) 효(孝)의 근본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김종하<국민행동본부 자문위원>


<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김종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google_plus msn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베스트 클릭
1
2018년 지방선거 누가 출마하나
2
6.13 지방선거, 전북도지사 누가 뛰나
3
‘롱패딩 점퍼 인기’ 학부모 등골 휜다
4
전주시, 부동산 불법 중개행위 특별단속 실시
5
대형 SOC 예산, 초광역권 협치로 돌파
신문사소개기사제보독자투고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북 전주시 덕진구 벚꽃로 54(진북동 417-62)  |  대표전화 : 063)259-2170  |  팩스 : 063)251-7217  |  문의전화 : 063)259-2176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북 가 00002   |  등록일 : 1988년10월14일  |  발행인, 편집인 : 임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상기
Copyright 2011 전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o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