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 쓴 납북어부들 “49년 만에…”
간첩 누명 쓴 납북어부들 “49년 만에…”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7.10.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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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어업 중 납북됐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춘환(71)씨 등 납북어부 3명이 4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전주지법 형사1부(장찬 부장판사)는 11일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각 1년 6개월과 8개월의 징역살이를 한 박씨 등 납북어부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유죄 증거들이 수사단계에서 불법구금과 고문·가혹 행위로 받아낸 진술로 증거능력과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영창호’ 선원이던 박씨는 1968년 5월 연평도 근해에서 동료 선원들과 납치돼 북한에 4개월간 억류됐다가 풀려났다.

 이들은 군산경찰서 경찰관들에게 모진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진술을 했고 이를 토대로 기소돼 징역 8월~1년6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에는 박씨를 비롯해 이미 숨진 선장 오경태씨와 선원 허태근씨를 대신해 가족이 법정에 섰다.

 영창호 선원 중 박씨는 8개월을 복역한 뒤에도 1972년 북한을 고무·찬양하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

 이 사건은 앞서 2011년 3월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이날 재판부로부터 또다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재심에서만 두 차례 무죄를 받게 됐다.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온 박씨는 “이제는 정말 홀가분하다”며 “하지만 이렇게 나이를 먹은 게 억울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씨는 “북한에 납치돼 구사일생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수사관들에게 밤이면 끌려가 모진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갖은 고문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고향에서도 살 수가 없어 충청도로 주거를 옮겨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선장 고 오경태씨의 딸 정애(52)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아버지는 항상 누워 계셨다. 무죄 판결을 받으니 오히려 담담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11일 오전 무죄를 선고받은 박씨 등 3명을 제외한 영창호 선원 정모(73)씨 등 4명에 대한 재심도 전주지법에서 열렸다.

 이들도 박씨 등과 같은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아 복역했으며 지난해 11월 재심 청구했다.

 이들 중 정씨는 박씨와 마찬가지로 징역 8월을 복역한 뒤 간첩죄로 또 기소돼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정씨 등 4명에 대한 재심 선고기일은 오는 20일 전주지법 2호 법정에서 열린다.

 당시 영창호 선원은 총 8명이었다. 나머지 한 명인 고 김모씨 유족도 곧 재심 청구할 계획이다.

 이들을 변호한 이명춘 변호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납북어부 1천500여명이 처벌받았는데 지금까지 무죄를 받은 사람은 채 10명이 안 된다”며 “아직 갈 길이 멀고 영창호 사건에 대해선 형사보상과 국가배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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