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촌의 일본인 지주와 조선농민 ‘봉인된 역사’
대장촌의 일본인 지주와 조선농민 ‘봉인된 역사’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7.09.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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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한 마을의 변화상을 담아낸 글을 통해 당시 한반도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윤춘호 SBS 기자가 펴낸 ‘봉인된 역사: 대장촌의 일본인 지주와 조선 농민(푸른길·2만원)’이 그 것.

 책의 배경은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전북 익산 춘포면의 작은 마을 춘포리다.

 하지만, 책에서 춘포리는 ‘대장촌(大場村)’으로 불리운다.

 행정지명에서는 사라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 지역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 ‘대장촌’을 꺼내든 것이다.

 ‘대장촌’은 큰 농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인데,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들이 이 마을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저자가 뜬금없이 작은 고향마을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 일까?

 윤춘호 기자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불과 100여 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손으로 잘 만져지지도 않고, 머릿속으로는 그 시대를 그려보려고 해도 그 시대상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우리가 배우고 기억해야 될 역사가 저항과 투쟁의 역사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따져 묻는다.

 그의 말마따나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선택받지 못한 역사는 묻혀 버린 것이 현실이다.

 숨겨진 역사적 실체를 현재로 불러내는 이 같은 작업들이 더욱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장촌이라는 마을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그리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닐 듯 싶다.

 일본인들의 주도로 농장이 세워지고, 철도를 놓았으며, 학교를 열었고, 전기와 상하수도를 들여왔다.

 뱀처럼 구부러진 만경강을 직강화한 것도, 초대형 제방을 완공해 홍수문제를 해결한 것도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패전과 함께 이 동네를 떠난 일본인 지주들의 이야기는 서둘러 봉인됐다.

 그들이 살던 집과 거대한 도정공장, 그들이 세운 철로와 도로는 지금도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이에 윤 기자는 “대장촌이라는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슨 일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거기에 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밝혀 보고 싶었다”면서 “이 책을 통해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의 대장촌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되살리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는 “민족에 상관 없이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을 현재로 불러내 가능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그들 행적을 기록하고 싶었다”면서 “이제는 백골도 진토되었을 그 동네 사람들의 역사적인 실존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북 익산 출생으로 서울대에서 서양사를 전공했고, 1991년부터 SBS 기자로 일하고 있다. 국제부장, 시민사회부장, 2017년 대통령 선거방송 책임자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방문연구원으로 1년, 도쿄특파원으로 3년 동안 활동하면서 일본 사회를 경험했으며, 한국 정치와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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