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일생 두 명의 여인과 운명적 만남을 하지만 완전한 사랑으로 이어가진 못했다. 그가 처음으로 흠모했던 정인은 자신의 제자이자 귀차르디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라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을 그녀에게 헌정하고 청원까지 하지만 거절당한다. 1806년, 베토벤은 대지주의 딸이자 빈 사교계의 재원으로 이름난 테레제에게 첫눈에 반하며 생애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하지만 큰 나이차와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한다. 가난한 뮤즈의 아들이자 ‘흙수저’였던 그는 적어도 사랑에서만큼은 신분의 벽을 넘고자 했었던 자유주의 사상가였지만 동시에 그것이 파혼을 초래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결국 테레제에 대한 애틋함과 계속되는 그리움으로 베토벤은 죽는 날까지 독신으로 보낸다. 사후, 그의 비밀 서랍에서 발견된 유서와 “불멸의 연인에게”로 시작되는 3통의 연문은 그녀가 줄리에타인지 테레제인지, 아니면 제 3의 여성인지에 대한 항간의 추측과 함께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더해지며 추리 연애 소설로 부풀려지는데, 당대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는 “내가 죽은 후 생전의 찬미자들이 내 편지를 출판할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굳이 위안하자면, 내가 쓴 연서의 내용이 베토벤의 것보다 더 얼빠진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이 위인의 수준보다 떨어지지는 않으리라.”라는 빈정거림으로 베토벤의 절절함을 야유했었다. 역시 밤에 쓴 연애편지는 부치지 말라는 통설이 맞는가보다.
18세기에서 19세기사이는 혁명과 반혁명,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으로 유럽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베토벤 역시 힘든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더군다나 가난과 질고에 시달려 온 말년의 그에게는 버티기 고단했을 것이다. 젊은시절, 음악가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던 청각을 잃고도 초인적 의지와 열정으로 난고를 극복한 그였지만 시대의 파고를 넘어가진 못한다.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에 사망한다. 생전에 그가 남긴 불후의 명곡들은 쇼팽, 리스트, 브람스, 슈만 등 후대 낭만파 거장들의 음악에 낭만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신호탄이 된다. 지금도 빈의 젠트랄프리드호프에는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누워있다.
이봉기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