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의 사회학
터널의 사회학
  • 안호영
  • 승인 2017.09.24 1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주 후반 완주군의 숙원사업이었던 ‘말골재 터널화’ 사업추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긍정적 소식이 전해졌다. 십 수차례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타당성 설득작업을 벌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지난해 진안군 소태정 터널 사업 착수 소식에 이어진 낭보이기에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향후 말골재와 소태정에 터널이 생기면 좁고 굽은 길에서 위험하게 통행해야 했던 주민들의 고충이 줄어들고 관광객의 편의가 증진되면서 전북 동북부 산간내륙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간지역 농촌 출신이기 때문인지 ‘터널’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에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 같았다. 도시로 진학을 하면서 터널은 고향집과 그리운 사람들을 빠르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시절에는 암울한 시대상이 긴 터널처럼 느껴졌었다. 변호사로 일하며 환경에 관심이 높아졌을 때는 “빠른 터널만이 능사일까?”라는 자문을 하며 종종 옛 꼬부랑길을 돌아 정취를 즐기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된 지금은 지역의 균형발전과 교류소통을 위한 역할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터널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다양하게 이미지가 차용된다.

 지난해에는 개봉한 영화 ‘터널’은 소통과 배려가 무너진 우리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이 영화를 보며 세월호참사를 떠올렸다는 국민들이 적지 않았고 나라 전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상황이 부른 다큐멘터리 같다는 비평도 있었다. 그 같은 저변의 사회적 분위기가 촛불집회 등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따랐다.

 박근혜 정부는 ‘터널시야(tunnel vision)’라는 말을 불러내기도 했다. 뇌신경심리학자인 이언 로버트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권력자는 호르몬 분비가 강해지면서 강한 인간으로 변화하지만, 터널에 갇힌 것처럼 시야가 좁아져서 공감능력이 약화하고 공격성향이 높아져 결국 자기파괴에 이르기도 한다. ‘유승민파동’, ‘최순실게이트’ 등에서 박 전 대통령의 ‘터널시야’가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지난해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할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대통령도, 새누리당도 터널시야를 갖고 있다. 대통령 지키기와 게이트 감추기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장과 분배에 대해 논의를 하면 허쉬만 교수의 ‘터널효과’도 단골로 나온다. 같은 방향의 2차선 터널 속에서 차들이 멈춰 서 있다가 한쪽 차선이 움직이면 다른 차선의 사람들도 곧 움직일 것이란 기대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기대가 어긋나게 되면 나머지 차선의 사람들이 차선을 바꾸는 위법행위를 해서라도 불공평한 사태를 시정하려 하면서 더욱 큰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득분배와 고용,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정부와 여당은 소득주도와 공정경제로 경제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터널의 많은 의미 중에서도 무주군 ‘나제통문’은 터널의 근본적인 지향점을 가장 잘 상징한다. 다른 것을 하나로 만드는 연결의 통로, 소통의 문, 화합의 장이 바로 터널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사회적 의미라 생각된다. 말골재와 소태정 터널이 조속히 완공되어 소통과 화합을 통한 지역발전이 성취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안호영<국회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