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서서학동의 통합
동, 서서학동의 통합
  • 박영진
  • 승인 2017.09.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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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서서학동은 전주부성 남쪽에 자리잡은 풍광이 아름답고 양지바른 곳에 학이 깃들고, 풍수지리상 학의 형상이 있다하여 부쳐진 지명이다.

동, 서서학동의 통합에 정치인들의 의견보다는 주민들의 뜻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므로 정치인들은 스스로 중립을 선언하고 주민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김제공항을 앞장서 반대한 정치인이 있어 공항이 없는 항공 오지로 전락한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문제를 책임지는 정치인은 없었다.

전주-완주 통합추진에도 전주시민과 완주군민들의 진정한 통합의 뜻 보다는 정치 연장선에서의 일부 정치인들 때문에 통합이 어렵게 된 것도 있었지만 역시 책임지는 지도자는 없었다.

결국 전라북도와 전주의 발전에 발목은 결국 정치인들이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서학동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천년전주의 밑받침이 되는 역사문화컨텐츠가 자리잡고 있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전주부성을 지켜 낸 남고산성, 남고사, 포은 정몽주의 암각서, 관성묘, 삼경사, 반곡서원, 동서학의 순교지 초록바위, 공수내다리, 불무골, 설화가 숨쉬는 미륵댕이, 흑석굴, 두무소, 당산제, 용소암, 매봉소, 흑석골과 한지, 수묵화의 세계적 거장 남천 송수남화백의 기념관과 유택, 문헌에만 전하는 흑석사, 구이에 보광사가 있어 구이 - 전주간 유일한 길 보광제, 지역 주민들의 음용수로 사용하던 3곳의 공동우물 등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다. 

예로부터 그 과정을 보면 지난 1403년(조선 태종 3년): 전주부 사정, 1914년 4월 1일: 전주면 서정(曙町), 1946년 7월 1일 전주부 서학동으로 개청됐다.

이후 1946년 8월 15일: 전주시 동서학동과 서서학동으로 분동하여 2017년 8월 15일 71년만에 원래의 서학동으로 하자는 통합의 필요성을 행정에서 제기한 것이다.

그간 상당한 역사문화컨텐츠가 소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문화의집, 청소년 문화센터도 변변히 없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동안 개발, 복지, 문화향유 등에서 철저히 소외되어온 지역 주민으로서 염려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전주시민들과 전주시는 공감하리라 믿는다.

아울러 전주시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서학예술촌 사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예술인들의 거점공간이 먼저 준비되어 현재보다 많은 예술인들의 창작과 정주 여건이 조성되어야할 것이다. 서학동의 공가 또는 폐가를 리모델링하여 저렴하게 창작과 정주여건을 갖추고 예향의 고장 전주에서 왕성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주시민들과 서학동 주민들은 전주시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모형제와 같이 살 수 있도록 양질의 직장을 만들어 주기를 원하고 있다. 또한 서학동의 발전 계기가 되어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동네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추진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김승수 전주시장께 ‘행복주민센터’를 다목적 행복주민센터, 즉 실내 지하 수영장과 작은 목욕탕, 체육장과 체육시설, 공연장, 회의실, 주민자치프로그램 운영실과 발표실, 청소년 참여 프로그램 운영실 등이 갖춰지기를 희망한다.

지역에 소재한 역사문화컨텐츠를 한옥마을과 연계가 되도록 제대로 보존과 개발을 위해 집중 투자와 서학광장을 지역주민들과 전주시민들이 불편을 겪지않는 교통흐름과 광장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글로벌문화협회장 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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