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대전과 완판본의 고장, 전주
독서대전과 완판본의 고장, 전주
  • 이동희
  • 승인 2017.09.1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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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독서대전’이 펼쳐졌다. 관광거리 위주의 보여주기 식 행사와 먹을거리나 노닐 거리, 그리고 일회성 눈요기 위주로 진행되던 저간의 행사들에서 진일보하였다고 본다. 이런 행사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전주가 한 번쯤 스쳐 지나가며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는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노력들이 전주를 한국 정신문화의 ‘꽃심’이 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독서 토론-책 전시-강연…’등에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승화시키려면 시민들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즐거움과 보람, 정신의 성숙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독서대전을 위해서는, 주최 측의 좀 더 섬세한 기획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출판문화의 본고장 전주의 오래된 전통과 자부심을 되살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없는 전통도 만들고 꾸며서 새로운 창조적 소재로 삼아가는 오늘날, 있는 문화전통의 명맥을 되살리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통은 과거의 명맥을 잇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데 참 의미가 있다. 그랬을 때, 과거의 전통이 오늘을 되살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를 개인적으로 자주 방문하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배후도시라는 이점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출판사들의 참여로 파주가 한국 출판문화의 새로운 메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파주가 출판문화도시로 성장하는 모델은 완판본의 고장인 전주가 참고할 만한 선례가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 고장에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들어선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한 기관의 유치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모태로 역동적인 유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필자가 알기로 이번 독서대전에서도 우리 고장의 출판사는 겨우 두어 곳만 참여했다고 한다. 모두가 서울의 대형출판사들이 참여하여 전주의 독서대전을 장식한 꼴이 되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아니겠는가.

 지방자치정부에서는 이번의 사례를 유념하여 전주가 완판본의 위상을 되살리는데 행정력과 기획의 창의성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일례로 전주한옥마을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관광 지역으로 삼았듯이, ‘완판본의 마을’을 조성하여 전주가 정신문화의 도시로 살아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낙후된 마을을 ‘책마을’로 집중 조성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소외되고 재개발이 필요한 마을 등을 헐고 부수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제논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마을을 리모델링하여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해 소통할 수 있는 ‘독서마을’로 거듭나는 것이다. 과거 동문거리에 즐비했던 ‘헌책방거리’를 전주의 어느 곳엔가는 다시 조성하여, 전국의 책 마니아들이 ‘전주에 가면 어느 책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일도 완판본의 고장만이 해볼 만한 소재가 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행정력과 예산지원을 경제논리나 하드웨어 측면에만 집중하는 한 완판본 고장의 위상을 되찾는 길은 멀다. 이제는 경제력이나 행정력을 소프트웨어의 측면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1인 출판사의 지원, 동네서점의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의 강구,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서 ‘북 카페’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 고장 필자에 대한 지원책을 중앙에만 미룰 일도 아니다. 이 고장의 필자를 우리가 키우는 일은 완판본의 내실을 기르는, 미룰 수 없는 요긴한 일이기 때문이다.

 “꽃샘추위도 저 멀리 달아난 봄날/삼천천 효자다리를 지나다 책장을 넘기듯 내려다보는데요,/(조금도 과장이 아닌)대하소설만한 잉어 여러 마리가/볼륨 엷은 수심 아래/흙탕물을 일으키며 독서삼매에 빠진 거예요/ 아마 모르면 몰라도/뻘 흙에 숨은 물지렁이를 찾거나/아니면, 수서곤충 애벌레라도 찾는 것이겠지만/그도 아니라면 봄볕 내려쬐는 천지광명을 불빛삼아/알 낳을 페이지를 넘기는지도 모를 일이지요”(졸시「봄날의 독서」에서) 완판본의 고장 전주가 독서로 충만한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심정이 낳은 시다. 완판본의 고장 전주가 사람은 물론 자연도 책이 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심정은 간절하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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