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에서 원인이 된 독성 화학물질이 치약에도 사용되고 있었다는 발표에 집집마다 치약을 내다 버리는 소란이 있었으며, 불과 지난주까지도 시끄러웠던 살충제 계란사건, 이번에는 여성들의 필수품인 유해성분 생리대까지……. 이제는 정말 모든 먹거리와 생활필수품을 의심해야 하는 사태로까지 번지는 듯하다.
이번 생리대 사태를 보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 단체와 연구진, 정부당국, 업체 간에 아직 생리대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과 진실공방이 진행 중에는 있지만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일관성 없는 대응이 혼란과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듯하다. 특히 자신의 몸에 직접 접촉하며 수없이 사용해 왔던 여성들의 불안감을 생각할 때 하루빨리 해결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나 살충제 달걀, 생리대 등은 하나같이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친숙하게 쓰이고 먹어왔던 제품들이기에 국민이 느끼는 혼란은 공포감마저 일으키는 듯하다. 친환경 인증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오고 정부에서 안전성을 보장한 생리대에서까지 독성물질이 발견되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쌓여만 가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생활화학제품을 꺼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모든 화학물질은 거부하고 천연제품만을 자급자족하는 ‘노케미족’이 생겨나는 등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은 분명하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국민의 불안감과 혼란을 키우게 된 원인이 다름 아닌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한 정부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점이다. 일 년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미 살충제 계란의 위험성이 거론되었으나 식약처는 무시하였고 이후 유럽발 사건이 터지자 뒤늦게 나서 표본조사만으로 살충제 달걀 사태 당시 산란계 농가의 약 96%가 안전하다고 발표한 후 여론에 떠밀려 실시한 전수조사에서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농장이 추가로 나오게 되었다. 또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살충제 달걀의 위험성 조사를 진행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류영진 식약처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나오고 다시 계란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가 무더기로 살충제 계란이 나오면서 국민의 불신을 더욱 가중시켰다. 생리대 유해성분 검출도 국민을 분노케 했다. 이번 생리대 유해성분 사태는 사실 1년 전부터 시작됐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준히 한 회사의 생리대 제품을 사용한 결과 생리량이 줄거나 생리통이 심해졌다는 글이 확산했었고 소비자단체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해 왔으나 식약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이 단체가 국내 유통 생리대 10종에 대한 조사를 국내 한 대학에 의뢰했으며 모든 제품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등 유해 물질이 22종 검출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뒤늦게 식약처가 사실 확인에 나서게 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 것이다.
양심 없는 기업과 재 역할을 못한 정부 때문에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은 위협받는 상황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건당국은 생리대 외에도 방향제, 해충용 각종 스프레이 제품, 세척용 세제, 그리고 식품 화학첨가제 등 이러한 용품에 대한 대대적인 안정성 실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래서 지난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수십 명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가 발생한 후 이루어지는 뒷북식의 대응은 이제 제발 그만 보고 싶을 뿐이다. 지금은 누구를 추궁하고 탓하는 것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국민들이 신뢰할만한 자료를 제공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한다. 정부의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