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죽음, 그리고 권리
두 가지 죽음, 그리고 권리
  • 이해숙
  • 승인 2017.09.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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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의 한 교사와 전주 ㅅ중학교 여학생의 죽음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둘 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쓰러졌다. 마치 교육의 그 무엇이 무너진 것처럼 씁쓸하지만, 그 두 형태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 교사의 죽음 끝에서는 학생인권의 문제가 뒤따라 붙고, 여학생의 죽음 끝에는 ‘멘탈 약한 요즘 아이들’에 관한 얘기들이 뒤따라 붙는다.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지금 이 두 형태의 죽음 뒷자리로 두 개의 권리가 충돌하는 모습을 띤다.

 교사의 죽음 뒤에 ‘지나친 학생인권 보호가 교권을 무너지게 했다’는 얘기들이 공공연하게 떠들어지고 있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있고, 그 시끄러운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그 시간에 우리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교권은 쓰러졌는가?

 13살 아이와 성관계를 나눈 여교사의 일탈이 전국의 뉴스를 떠돌고, 거의 매일 뉴스의 한 축을 담당한 교사들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소식들은 넘쳐나건만 카메라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 반성의 모습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다.

 권리는 무엇인가?

 사람이란, 남자나 여자나 갓난아이나 피부의 색깔, 장애인과 같은 특징을 구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에게 누가 주어서 가지게 된 권리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권리인 천부적 권리, 그것이 인권이다.

 인권이란 학생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유보해놓거나 제한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도 ‘학생도 인간이며 인간으로서 향유할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주체이며, 인간으로서의 누릴 인권을 가진 주체’라는 것은 헌법정신을 실현하는 길이다. 학생은 성숙과정에 있기 때문에 판단력이 부족해 인권을 유보해놓아도 좋다는 그런 규정은 그 어느 헌장이나 법에도 없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 역시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며, 학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교사는 정치적인 것을 포함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외부적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가진다.

 교육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모색하고 함께 도모해야 하는 일이다. 개체간의 권리의 충돌은 싸움이 아니고 더 나은 지점으로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그 전제에는 교권과 학생의 인권이 서로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공존해야 할 두 개의 영역이라는 조건이 깔렸다는 얘기인 셈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권리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는 만큼 학생들의 권리 또한 소중하다. 그렇게 스스로 자기 삶의 주체로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의 학습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권리가 타인에게도 고르게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바탕이며, 관계 속에서 공존의 이유와 그 공존의 기본 전제인 평화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연대를 학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세상의 존재, 그 자체로 주어진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학교가 해야 할 교육의 핵심이요, 기본이다. 학생인권조례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누구나 정당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인권교육이요,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게 학생인권조례다.

 교사의 자살소식도 슬프고, 꽃 같은 여학생의 죽음도 슬프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슬픈 두 주검 앞에서 교권의 추락만이 얘기되어지고,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만이 얘기되는 것은 더욱더 슬픈 일이다. 학생의 인권이 축소되어야 교사의 권리가 충족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권과 학생의 권리는 상생의 가치가 전제될 때 성립되는 조건이란 걸 잊지 말자.

 이해숙<전라북도의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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